정치는 프레임 싸움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프레임의 주도권을 선점하는 진영이 여론을 이끌어 나간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외친들 도리어 코끼리를 생각나게 해 줄 뿐이다. 반대하는 순간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되어 있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이후 '프레임'이란 말은 유행어처럼 번졌다.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는 미국에서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면서 민주당이 참패한 때였다. 진보 진영이 왜 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프레임'이라는 핵심 단어로 풀고 있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 즉,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의 틀이다. 그러므로 프레밍은 뇌 시냅스의 회로 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나는 내 안의 기존 회로망이 이해하도록 허용하는 것만큼을 이해할 수 있다. 보수적 관점의 회로망을 갖춘 사람이 진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프레밍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만약 재구성하게 된다면 그것은 개인 및 사회 변화를 의미한다.
이 책은 미국의 정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지은이는 부모의 가치관으로 설명한다. 보수파는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관을 가지고 있고, 진보는 자상한 부모의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 이 둘로 보수와 진보의 생각과 행동이 상당 부분 설명된다. 우리나라의 보수나 진보도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은이는 프레임이 슬로건이나 네이밍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프레임이 이런 것들을 통해 형성되거나 강화된다. 정치적 언어나 용어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오바마 정부 때 공화당은 오바마의 대표 정책인 저렴한 건강보험법을 '오바마 케어'라고 명명하면서 반대하고 공감을 얻었다. '케어'라는 말 속에 오바마가 권력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세금 폭탄'이 떠오른다. 노무현 정부 때 부자 증세 및 부동산 세제 개혁을 할 때 반대하는 기득권층과 언론에서 쓰면서 추진하는 동력을 잃어버렸다. '폭탄'이라는 용어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이 한 마디로 대통령 얼굴이 바뀐다. '세금 폭탄'은 지금도 심심찮게 등장하면서 공정 사회로 가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간은 본래 이익을 탐하므로 유권자들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투표하리라는 예상은 자주 어긋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가는 해묵는 의문이다. 선거 때 사람들은 더욱 정서적이고 감정적으로 변한다. 이때 프레임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슬로건이 중요해진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호응을 받지 못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할 수록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생각은 물리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뇌 회로에 새겨진다. 그 다음은 형성된 뇌 회로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프레임을 통해 생각한다. 세상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 뇌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다. 소위 우꼴이나 좌빨이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뇌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선거에서는 지은이가 이중개념주의(Biconceptualism)이라 부르는 중도층이 핵심 역할을 한다. 현실 정치에서 프레임 싸움도 이들이 주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어보니 우리나라 정치 수준이 너무 낙후되어 있는 것 같다. 보수나 진보나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은이가 말하는 프레임이 그저 정치적 잔기술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품격 있는 언행을 하는 정치인이 왜 이리 드물까. 우선은 길거리에 나붙어 서로 상대편을 비난하는 꼴 보기 싫은 현수막이나 안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