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오래 한숨을 쉬었던 영화다. 내용이 스릴러 영화로 분류될 정도로 긴장을 시키지만, 나는 영화에서 비중 있게 나오는 치매에 걸린 노년의 삶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데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살아가는 문정은 아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간병인 일을 한다. 소년원에 있는 아들은 곧 출소할 예정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문정이 자신의 뺨을 때리는 자학 증세가 나오는데 이는 문정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정은 성심성의껏 치매에 걸린 노부부를 간병하는데, 어느 날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 문정은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든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만다. 가족이라는 족쇄가 문정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정이 간병 일을 하는 집의 노부부 중 아내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고, 남편은 경증이지만 눈이 멀었다. 둘은 교수 부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늙고 병드니 길바닥에 뒹구는 낙엽 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멋있고 아름다운 노년, 품위 있게 살아가는 노년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돈이나 지식도 아무 소용도 되지 않는다. 영상 통화만 할 뿐 자식들마저 찾아오지 않는 병든 노년은 비극이다. 오래 살게 되는 대가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인간의 숙명인지 모른다.
남편은 그나마 온전한 정신이 일부나마 남아 있을 때 최후의 선택을 한다.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따라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죽인 사람이 아내가 아닌 또 다른 치매 환자였지만). 인간성을 잃고 비참하게 살아가느니 그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 상당한 확률로 일어날 수 있음이 슬펐다.
문정 역을 맡은 김서형 배우의 연기는 최고였다. 이 영화를 만든 젊은 이솔희 감독의 역량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일부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아쉽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다른 무엇보다 치매를 앓는 노부부의 삶에 집중하며 보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닐하우스가 불길에 휩싸이는데, 지옥도를 만드는 인간의 욕망과 애착이 모두 불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는 게 뭔지, 너무 슬프고 아픈 영화 '비닐하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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