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소공녀

샌. 2023. 9. 23. 09:32

 

본 지 꽤 되었지만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다.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는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젊은이다. 일당 45,000원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욕심 없이 살아간다. 또래 젊은이들이 꿈꾸는 돈이나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미소의 소확행이라면 일이 끝난 뒤의 위스키 한 잔, 담배, 그리고 미소만큼 착한 남자 친구다.

 

어느 날 거처하고 있던 단칸방의 오른 월세를 부담할 수 없어 미소는 홈리스가 된다. 미소는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싸들고 나서며 길 위의 여행자로 살려고 한다. 그리고 옛날 밴드 활동을 함께 하던 멤버들을 찾아간다. 영화는 옛 멤버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함께 미소와의 교감이나 갈등을 다룬다.

 

집도 없으면서 위스키와 담배를 즐기는 미소를 보며 염치없다고 핀잔을 주는 친구도 있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이런 대답을 하며 미소는 친구의 집을 떠난다. 영화가 시종일관 의문을 던지는 것은 한 인간을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각자의 관점과 기준은 상대적일 뿐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 없다.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으로 한 인간을 재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미소는 정직한 노동으로 근근히 일상을 영위할 정도의 돈을 벌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어이없을지 몰라도 미소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당당한 삶이다. 미소의 삶의 중심에는 정직이 있다. 타인과의 생존경쟁에 휩쓸리지 않으니 거짓과 위선도 피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소가 타인을 비웃거나 경멸하지 않는다. 미소는 친구집에 있을 때도 무언가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제 몫을 한다. 같은 방식으로 미소 역시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는 침범받지 않을 삶의 영역이 있다. 미소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양식 중 하나를 보여준다.

 

미소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버렸다. 미소의 인생관이라면 도시보다는 시골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시골이 도시보다는 훨씬 더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멀리 화려한 고층 아파트의 불빛을 배경으로 한강변에 설치한 미소의 작은 텐트가 너무나 안쓰럽게 보이는 장면이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소공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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