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가재가 노래하는 곳

샌. 2023. 2. 20. 13:17

영화를 먼저 보고 감동을 받아 소설을 찾아 읽었다.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가 일흔 살에 쓴 첫 소설로 30주 넘게 아마존 1위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이다. 작가 자신의 야생 동물을 벗 삼아 평생을 보낸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로, 습지 소녀 카야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해안가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습지 지역이다. 카야는 가정폭력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습지에서 고립되어 혼자 살아간다. 고작 일곱 살인 소녀가 살기에는 거친 환경이지만 카야는 자연의 품 안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가정폭력, 인종차별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살인 용의자로 몰린 카야가 재판을 받는 과정도 길게 나오는데 스릴러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범인이 과연 누구인지 책과 영화의 끝까지 궁금함을 품게 한다. 반전이라고 할까, 마지막에서야 궁금증이 풀린다.

 

카야는 불행한 유년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간 영민하고 용기 있는 여자다. 서로 상반되는 기질의 두 남자인 테이트와 체이스와의 사랑을 통해 아픔을 겪지만 자연으로부터의 배움으로 잘 헤쳐나간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연 속에서 홀로 깨우친 지혜가 그녀를 살리는 힘의 원천이 된다. 마을 사람들이 카야를 습지 소녀라고 배척하지만 그중에는 점프 부부 같은 마음씨 좋은 사람도 있다. 카야에게 연민을 느끼고 도와주는 사람은 백인이 아니라(변호사는 예외) 차별을 받고 있는 동병상련의 흑인이다. 

 

서로 먹고 먹히는 자연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생존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체이스로부터 도전을 받을 때 카야에게는 본능적인 생존 반응이 나타난다. 소설에서는 반딧불이와 사마귀의 행동을 통해 카야의 입장을 변호한다. 살기 위해서는 먹잇감이 포식자를 죽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야생의 딸인 카야도 떳떳하다.

 

체이스가 카야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체이스는 카야를 욕망과 소유, 농락의 대상으로 여긴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것과 같다. 결말은 파멸이다. 자연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카야는 이해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역경을 뛰어넘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여인의 일대기가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다. 작가는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쓰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했다. 카야는 가족과 이웃에게 버림받고 또 사랑을 주었다가 배반당하며 혼자 사는 법을 자연에서 배우면서 이겨 나간다. 사회복지과에서 카야를 공동 시설에 옮기려 하지만 카야는 거부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어떤 방식이든 외로움은 인간의 기본 조건이다. 도시에서 함께 어울려 산다고 외롭지 않겠는가. 서로간에 생존경쟁으로 치열한 문명사회가 어쩌면 카야보다 더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지 모른다. 카야는 고립과 외로움을 두려워하지도 회피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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