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염세 철학자의 유쾌한 삶

샌. 2023. 2. 16. 09:04

쇼펜하우어를 염세 철학자로 규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세상의 근본을 고통이라 봤지만 반면에 지혜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것은 동양 불교의 선(禪)이나 도가 사상과 닮은 데가 있다. 20대 초반에 읽었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통해 그가 생을 부정하는 철학자가 아님을 확인했었다. 제목이 도발적인 <염세 철학자의 유쾌한 삶>은 그의 저작 중에서 유쾌하기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을 뽑아서 소개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을 통해 지혜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고독해야 한다. 고독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통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고독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고슴도치 비유는 유명하다.

 

"고슴도치 무리는 추운 겨울이 오면 얼어 죽지 않도록 서로 온기를 나누려고 최대한 가까이 밀착한다. 하지만 곧 상대방의 가시가 따가워 다시 떨어진다. 온기에 대한 욕구는 그들을 다시금 밀착시키지만 두 번째 문제가 또 발생한다. 이렇게 고슴도치들은 두 가지 고통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다가 마침내 고통을 가장 잘 참아낼 수 있는 적절한 간격을 발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내부의 공허와 단조로움에서 생겨난 사회적 욕구는 사람들을 서로 가까이 밀착시키지만, 그들의 혐오스러운 속성과 참을 수 없는 짓거리들은 사람들을 다시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그들이 마침내 찾아낸 견딜만한 중간 간격은 예절과 공손함이다. 이 간격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영국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Keep your distance!" 이런 거리 탓에 서로 온기를 나누고픈 욕구는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지만 그 대신 가시에 찔리는 아픔도 없다. 그러나 자기 내부에 온기가 충분히 많은 사람은 차라리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서 아무런 고통도 주고받지 않는 편이 낫다."

 

고독에 관한 다른 발언이다.

 

"사람들이 가장 완벽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대상은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개성과 상황의 차이는 크고 작은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참되고 깊은 마음의 평화와 완전한 안식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어린아이는 단지 몇 분만 혼자 두어도 무서워서 소리지르며 운다. 그보다 좀 더 큰 아이에게 혼자 있는 것은 커다란 벌이다. 더 큰 소년이 되어도 여전히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지만 그중 고귀한 성품을 지녔거나 생각이 깊은 아이들은 때때로 고독을 찾기 시작한다. 물론 하루 온종일 혼자 있는 것은 이런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성인 남자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다. 그는 아주 오래 혼자 있을 수 있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그렇다. 비슷한 세대가 대부분 사라지고 홀로 남은 노인은 이제 생의 희열이 희미해지거나 아예 죽어버린 가운데 고독의 진수를 발견하게 된다."

 

"참된 인간은 사람들을 멀리한다. 이처럼 철저히 천박한 세상에서 비천하지 않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킬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사람들의 무리에서 멀리 벗어날수록 그의 상태는 점점 더 좋아진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초를 먹을 수는 없듯이, 아무리 사회적 욕구가 강해도 세상 사람들과 함부로 어울려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픈 욕구를 충동질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염증과 권태다. 그러므로 스스로 충분히 많이 소유하여 이런 충동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흔치 않은 복이다."

 

"고귀한 본성을 지닌 사람일수록 고독하기 마련이며, 이는 본질적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람은 물리적 고독과 정신적 고독이 일치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 온갖 이질적인 사람들의 무리는 그를 방해하고 피곤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그를 적대시하고 심지어 그에게서 자아를 강탈해 간다. 그러고는 그것을 대신할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현실은 오직 고통일 뿐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기만이고 착각이고 허상이다. 삶은 향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내고 견뎌내기 위해서 있다고 한다. 이런 가르침에서는 확실히 염세주의자의 냄새가 난다. 쇼펜하우어는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 행복을 바라지 말라고 한다. 많이 원하는 사람은 쉽게 실망하는 법이다. 현명한 사람은 요구를 줄인다. 욕망하는 의지를 넘어설 때 비로소 올바른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인간은 '의지와 표상의 세계'에서 의지를 극복하고 피안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그 길은 철학을 통해서다.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세계는 불교의 열반/니르바나의 경지와 닮았다. 책의 끝에 나오는 이 글은 명문장이다.

 

"우리는 의지의 격렬한 갈망에서 해방되고 대지의 무거운 기운에서 벗어나는 이런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축복의 순간임을 안다. 이때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느낀다. 그의 의지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때처럼 일순간이 아니라 항시적이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멈춘다. 몸을 유지하고 몸과 더불어 소멸하는 마지막 불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꺼져버린다. 자신의 본성과 수많은 힘겨운 싸움을 벌인 뒤에 마침내 그것을 완전히 극복한 사람은 이제 오직 순수하게 인식하는 존재이며, 세계의 맑고 투명한 거울이 된다. 더 이상 아무것도 그를 불안하게 만들지 못하며, 아무것도 그의 감정을 뒤흔들지 못한다. 그는 우리를 이 세상에 묶어 놓은 수많은 욕망의 실타래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치지 않는 고통 속에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공포, 갈망, 질시, 분노 따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평온하고 미소 띤 눈빛으로 세상의 온갖 환영과 허상들을 되돌아본다. 한 때 그의 마음을 그토록 뒤흔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세계를 이제 무심하게 바라본다. 경기가 끝난 뒤에 장기판의 말들을 다시 보듯이, 아침에 일어나 어제 우리를 그토록 흥분시켰던 가장무도회의 의상을 바라보듯이, 인생은, 그리고 인생의 여러 형상들은 이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덧없는 현상으로서 그의 눈앞에 떠다닌다. 선잠 속에 꾼 새벽꿈처럼 그것들은 더 이상 사실인양 그를 속이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새벽꿈에서 깨어나듯이 아주 평온하고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재가 노래하는 곳  (0) 2023.02.20
다읽(17) - 동물농장  (0) 2023.02.19
조용한 열정  (0) 2023.02.09
빨치산의 딸  (0) 2023.02.07
상처로 숨 쉬는 법  (0)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