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17) - 동물농장

샌. 2023. 2. 19. 11:33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동물들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었다. 완전한 번역본이었다기보다 다이제스트 판이었는지 모른다.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50여 년이 넘어 다시 읽어보니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냉소적인 정치 풍자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반골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러시아 혁명에 기대를 걸었으나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저지른 만행에 환멸을 느꼈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필연으로 예견한 노동자와 인민의 낙원은 한 사람의 권력 야욕 앞에서 무참하게 스러졌다. 그는 부패하는 혁명의 과정을 똑바로 목격했다. <동물농장>을 통해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혁명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아마 오웰이 이 책을 쓴 목적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나폴레온의 거짓 선동에 넘어가서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지몽매한 민중에게 책임의 상당 부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소설에서는 대표적으로 양들이 그렇다. 양들은 무지한 대중을 대변하며, 대중이 어떻게 권력자들에 조종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양들은 권력자의 구호를 따라 외치면서 개돼지 취급을 받아도 오히려 감지덕지한다.

 

현실에 대입하면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양들과 닮아 있다. 내 편은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틀렸다고 믿는다. 아니 억지로 믿으려고 한다. 한쪽 주장만 듣고 따르는 무리들이다. 이런 무리들은 왼쪽에도 있고 오른쪽에도 있다. 옛날 운동회에서 너무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를 외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부족주의를 벗어나 냉철한 비판 의식을 가지는 일이다. <동물농장>에서는 나폴레온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의견이 제시되면 양들이 가만 두지 않는다. 양들의 구호는 단순하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현실의 정치판에서도 자기들 정파 이익에 반하는 언동을 하면 즉각 제재가 들어간다. 소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동물농장>에는 모지스라는 까마귀도 나온다. 까마귀는 죽어서 가게 될 '설탕사탕산'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리며 민중을 현혹한다. 까마귀는 종교/러시아정교회를 상징하며 권력자는 피착취자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다. 자본주의라고 다르겠는가. 종교는 현실과 야합하면서 권력 유지의 정치적 도구가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권력과 종교가 상부상조의 관계인 것은 수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은 일으키기보다 처음의 순수한 정신을 지키는 게 더 어렵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은 실패했으며 도리어 '사회주의를 배반한 혁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상이 아무리 바람직하더라도 권력 욕망이 작동하는 한 혁명은 주체 세력의 교체로 귀결되고 만다.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의 비극을 보여주면서 권력의 타락을 막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 의식과 저항 정신이 필요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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