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인생을 낭비한 죄

샌. 2022. 11. 21. 10:14

오래전에 본 영화 '빠삐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빠삐용이 꿈에서 자신을 기소한 검사와 대면하는 부분이다.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절해고도에 갇힌 빠삐용은 어떻게든 탈출해서 누명을 벗으려 한다. 그러나 탈출은 실패하고 독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악몽을 꾼다. 먼 사막의 지평선에 검사가 나타나 빠삐용을 바라본다. 빠삐용은 외친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검사는 말한다.
"맞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는 살인보다 더한 죄를 저질렀다."
빠삐용은 억울하다는 듯 대꾸한다.
"그게 뭡니까?"
검사가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다."
빠삐용은 고개를 떨군다.
"나는 유죄다."

젊었을 때 이 장면을 보고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빠삐용의 자유를 향한 초인적인 집념보다 몇 배나 더한 울림이었다. 빠삐용의 기소 죄명이 나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검사의 정확한 대사는 이렇다.
"Yours is the most terrible crime a human being can commit. I accuse you... of a wasted life."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범죄, 인생을 낭비한 죄로 너를 기소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를 물을 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 역시 심판정에 섰을 때 빠삐용처럼 기소될 게 뻔하지 않겠는가. 동시에 현재를 충실히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한다.

'낭비'를 실용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서 무언가 유익한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마 젊었을 때의 나도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한 마디로 "열심히 살자!" 정도이지 않을까. 열심히 살려면 생산성이 있는 일을 해야 하고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뭔가가 빠져 있다. 열심히 인생을 산 사람 중에서도 노년이 되었을 때 지나온 인생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높은 지위에 올랐고 물질적인 부도 축적했지만 내면은 공허하다. 세상의 잣대로 한 인간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이룬 업적에 관계없이 인생을 낭비한 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고군분투하며 살지만 실제는 헛심만 쓴 경우다. 선의로 한 일이 지구 생태계나 인류의 삶에 해를 끼친다. 열정, 야망, 성취, 성공 같은 어휘가 가지는 위험성이다.

지금 돌이켜 보는 '인생을 낭비한 죄'는 존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시간들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했느냐의 성과주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행복을 맛보는 존재주의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분명 빠삐용도 세상에 있을 때 성공을 위해 엄청 열심히 산 사람이었을 것이다. 무위도식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을 낭비한 죄로 기소되었고, 고개를 숙이며 인정했다. 빠삐용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열었으며 그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인생을 충실히 산다는 것은 노자식으로 말하면 유위(有爲)가 아니라 무위(無爲)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일 게다. 무위를 현실적으로 풀이하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다. 소학행에서 오는 생의 기쁨이다. 번다하고 화려한 세계 대신 단순하고 소박한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를 '즐긴다'는 너머의 의미가 있다. 감각적인 쾌락이 아니라 점염(漸染)하는 정신의 열락이다. 인생을 즐긴다는 것은 무엇을 함이 아니라 오히려 유유자적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란다고 너무 힘을 넣거나 무겁게 살아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유위의 세계에서 무위의 세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 평생을 유위의 세계에서만 머문다면 그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강변한들 - 나름으로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더라도 - 인생을 낭비한 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리라.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때때로 영화 '빠삐용'이 떠오른다. 딱 한 장면이다. 영화와 같은 무대에 빠삐용 대신 이번에는 내가 서 있다. 인생을 낭비한 죄로 고발당하는 내가 보인다. 'I'm guilty!"라고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이어진다. 나는 발버둥칠수록 늪에 빠지는 가련한 짐승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 존재의 한계인지 모른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은 날의 초상  (0) 2022.12.01
쓸쓸하고 가련한  (0) 2022.11.29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0) 2022.10.30
당연한 일은 없다  (0) 2022.10.19
200일 & 50일  (0) 202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