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고흐, 영원의 문에서

샌. 2022. 5. 14. 10:51

 

'고흐, 영원의 문에서[At Eternity's Gate]'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1888년에 아를로 옮긴 이후의 인생 후반부를 그린 영화다. 한 예술가의 고뇌와 열정이 고흐 그림의 느낌이 나는 화면에 잘 담겨 있다. 고흐의 격정적인 삶을 차분하면서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내면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적대적이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 힘들게 예술혼을 불태우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던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안타깝다. 그렇다고 고흐가 늘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는 상당 부분을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는 고흐를 보여준다. 화구를 메고 그림의 소재를 찾아 초원을 걷는 행복한 고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간관계는 서툴렀지만 자연과의 교감에서는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던 고흐였다. 

 

고흐는 자연을 통해 신과 아름다움을 느꼈고 영원으로 나아가는 문을 발견했다. 그가 본 자연은 우리가 보는 자연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가 자주 한 말이다. 영화에서는 고흐의 시점을 보여줄 때 화면의 반이 흐릿하게 나온다. 실제 고흐는 안질환을 앓았고 특정 색을 강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별이 빛나는 밤' 같은 그림을 보면 역동적이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흐는 다독가였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보면 글도 잘 쓰면서 무척 지적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도 셰익스피어를 읽는다거나 신부와 성경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동시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품고 있었다. 마음의 문을 닫은 그는 심지어 어린 아이들한테서도 놀림과 배척을 받는다. 제일 마음이 아픈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고흐와 접촉하는 여러 사람들이 고흐에게 냉담하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나온다. 겨울철 금속의 표면처럼 차갑다. 고흐가 이웃에게 느꼈을 감정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중 누구 하나라도 따뜻하게 감싸주었더라면 고흐의 삶이 달랐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나마 예술가 동료였던 고갱마저 떠나자 고흐는 폭발하게 된다. 

 

권총 자살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사고사로 나온다. 아이들이 싸우다가 총이 오발되어 옆에 있던 고흐가 맞은 것이다. 마지막에 살았던 곳에서 고흐는 친구의 후원을 받으며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석 달 정도에 70 편 가까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영화로만 보면 굳이 자살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영화 포스터에 보니 '신화가 아닌 인간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라는 문구가 있다. 딱 이 영화에 어울리는 말 같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시대와 불화한 천재 예술가의 삶이 애잔하면서 따스하게 잘 그려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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