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적인, 지적인, 책벌레, 꾸밈없는, 섬세한, 사려 깊은, 진지한, 숙고하는, 미세한, 내성적인, 내면을 향하는, 부드러운, 차분한, 수수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수줍음 많은, 위험을 싫어하는, 얼굴이 두껍지 않은 - 이는 내향 성향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두세 명 중 한 명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회식보다는 독서를 좋아한다. 혁신과 창조에는 열광하지만 자기 자랑은 싫어한다. 여럿이 일하기보단 혼자 어딘가에 콕 박힌 채 고독한 작업을 즐긴다. 이 책 <콰이어트(Quiet)>는 내향성을 가진 사람의 숨겨진 힘에 초점을 맞추고 격려한다. 부제가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지은이인 수전 케인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이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수전은 성격에 관한 연구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향성이 얼마나 위대한 자질인지 증명해 보이기로 마음먹고 이 책을 썼다.
내향성과 외향성은 각각의 특징이 있는 성격이지 어느 것이 낫거나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 서구 사회중에서도 미국 - 외향성을 이상적인 성격으로 내세우면서, 내향성은 비사교적이며 반사회적인 병적인 성격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다. 팀 플레이를 강조하는 회사에서도 내향적인 사원은 환영받지 못한다. 내면을 중시하는 인격의 문화에서 외면을 중시하는 성격의 문화로 바뀌었다. 유창한 언변과 사교 능력이 있어야 주목받고 남보다 앞설 수 있는 세상이다.
기질이나 성격은 타고난다는 증거들이 더 많다. 신생아 500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 실험한 바에 따르면 아이가 나중에 내향적이 될지 외향적이 될지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간단한 모빌 실험에서 고반응을 나타내는 유아는 나중에 조용한 아이가 될 확률이 현저히 높았다. 내향성은 환경에 민감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갖는다. 소음 실험에서도 내향성은 55dB까지, 외향성은 72dB까지 견뎠다. 문득 든 생각인데 아파트 층간 소음도 내향성인 사람이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내 경우를 유추해봐도 맞는 말이다.
지은이는 내향성의 장점이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말한다. 반응성이 높은 아이는 자기가 본 것을 더 깊이 생각하고 느끼며 일상의 경험을 좀 더 세세하게 구분할 줄 안다. 또한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실수로 부수었을 때 죄책감과 슬픔을 더 강하게 느낀다. 경계심, 차이에 대한 민감함, 연민 등의 정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점점 부족해지고 과소평가되는 능력들이다.
진화적으로 볼 때 여자는 대체로 외향성의 남자를 선호한다. 활발하고 당당하고 유머가 있는 남자에게 끌린다. 그렇다고 내향성 남자들이 도태되고 모두 외향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일정 비율의 내향성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 사회가 두 성격을 함께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향성의 기질로 인해 문화나 예술 방면에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모두가 바이킹이라면 야만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은이는 내향성이나 외향성을 막론하고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것이다. 그러자면 일상생활에서 되도록 '회복 환경'을 많이 만들어두라고 충고한다. '회복 환경'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가는 장소다. 조용한 자신만의 방일 수 있고, 요가나 명상을 한다거나, 직접 만나는 대신 이메일로 대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인터넷 시대는 내향성인 사람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이를 건설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책의 내용 중에서 학교에 관한 부분도 공감이 되었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청소년기에 다니는 학교는 거대한 장애물이 가로놓인 장소며 낮은 자긍심과 사회불안이라는 어둡고 뒤엉킨 덤불이 기다리는 곳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주로 통하는 것은 생기발랄함과 사교성이다. 깊은 생각이나 섬세함은 별로 쳐주지 않는다. 내 학창 시절을 되돌아봐도 스트레스가 아주 심했다. 더구나 요사이는 토론 수업과 발표 중심이어서 외향적인 아이들에게 최적화되어가고 있다. 내향적인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쨌든 세상은 외향적인 성격인 사람이 살아가는 데 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조용하고 사색적인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콰이어트>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책의 끝에 내향적인 사람을 위한 조언이 나온다.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 타고난 장점(끈기, 집중, 통찰, 섬세함)을 활용하여 자신이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하라. 문제를 해결하고, 예술 작품을 만들고, 깊이 생각하라.
자신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라. 그러기 위해 공개 강연이나 인맥 쌓기 등 불편한 활동을 해야 한다면, 그래도 해라. 그것이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그 일을 마쳤을 때 자신에게 보상해주어라.
TV 앵커 자리는 그만두고 도서관학 학위를 따라. 하지만 앵커라는 일을 사랑한다면, 그 일에 필요한 외향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라. 인맥 형성 모임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기본 규칙은 이것이다. 명함만 잔뜩 받아오기보다는 한 명이라도 제대로 관계를 형성하는 편이 훨씬 낫다. 모임이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소파에 늘어져라. '회복 환경'을 만들어두라는 의미다.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어한다면 그것을 존중하되, 홀로 있고 싶어 하는 자신의 필요도 존중하라.
자유 시간에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하라. 12월 31일 저녁에도 혼자 있는 것이 좋다면 그렇게 하자. 위원회 회의는 까먹어라. 길 가다가 우연히 지인을 만나 무의미한 잡담에 얽히고 싶지 않다면 방향을 바꾸어라. 읽고, 요리하고, 달리자. 이야기를 쓰자. 일정 횟수만큼 사교 모임에 나가는 대신 모임을 거절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자신과 거래를 하라.
여러분의 아이가 조용하다면, 아이가 새로운 상황과 사람을 접하도록 도와주되 평소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지내게 내버려두자. 아이의 독창성을 기뻐하라. 건전한 양심과 우정의 깊이를 자랑스러워하라. 아이가 군중을 따르리라 기대하지 마라. 대신 아이가 관심사를 추구하도록 격려하라. 드럼을 치든, 소프트볼을 하든, 종이에 글을 쓰든 아이가 관심사에서 결실을 얻으면 색종이를 뿌리며 축하해주어라.
여러분이 교사라면, 사교적이고 활발히 참여하는 학생들의 존재를 만끽하라. 하지만 수줍음 많은 아이들, 부드러운 아이들, 자율적인 아이들, 화학실험 용품이나 앵무새 분류학이나 19세기 예술 등에 외곬으로 파고드는 아이들도 잊지 말자. 이 아이들은 내일의 예술가요 엔지니어이며 사상가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겉모습이 실제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어떤 사람들은 외향적인 듯 행동하지만, 그러기 위해 에너지와 진정성과 심지어 신체적 건강까지도 희생해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냉담하거나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세계는 풍요롭고 온갖 드라마로 가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음에 평온한 얼굴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방정식의 해답을 풀거나 소네트를 짓거나 모자를 디자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떠올리자. 즉 그 사람은 조용하게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와 동화를 접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다양한 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아이는 제다이의 라이트세이버를 받고, 어떤 아이는 마법사에게 교육받는다. 비결은 온갖 힘을 다 수집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받은 힘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풍요로 가득한 내면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받았다. 그런 열쇠가 있다는 것은 엘리스처럼 토끼굴로 굴러떨어진다는 뜻이다. 엘리스는 스스로 원해서 '이상한 나라'로 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새롭고 환상적인 자기만의 모험으로 만들었다.
그나저나 루이스 캐럴도 내향적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그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