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혼자 있기 좋은 방

샌. 2022. 5. 7. 10:28

"화가, 작가, 꾸준함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이 책 지은이인 우지현 씨 소개의 첫 문장이다. 지은이의 그림은 보지 못했지만 글은 무척 잘 쓰시는 분이다. 글의 기교보다는 글에서 풍기는 향기와 깊이가 독자를 끌리게 한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은 그림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처음 보는 예쁜 그림들이 많아 눈호강을 하면서 화가의 삶을 통해 우리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온갖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미가 있음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책은 '조용히 숨고 싶은 방' '완벽한 휴식의 방' '혼자 울기 좋은 방' '오래 머물고 싶은 방' 등 4부로 나누어져 있으나 큰 의미는 없다. 꼭 방에 관한 그림도 아니다. 잔잔한 일상을 그린 그림에서 시공을 떠난 보편적인 인간의 삶을 음미해 본다.

 

그림만이 아니겠지만 예술 작품은 인간의 삶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 점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의 삶과 마주한다. 그림에는 인간이 지나온 시간의 자취, 희로애락, 일상의 무게감, 영혼의 메시지, 기억의 숨결이 녹아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감동과 여운을 전해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냥 스쳐 지나갈 그림도 지은이의 설명이 보태지면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여럿 중에서 러시아의 화가 지나이다 세레브리아코바의 일생이 가슴에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순탄치 못한 삶을 극복해 나가는 의지가 보여서 숙연해진다. 말년의 자화상은 내가 언제 힘들었냐는 듯 초연하고 당당해서 아름답다. 지은이를 그녀를 설명하며 이렇게 적었다.

 

"나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토록 모질고 험한 세상에서 내 마음을 지킨다는 건 지옥에서 꽃을 피우는 것만큼 힘들지 모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신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끝없는 흔들림 속에 비로소 지켜내는 것이다. 사는 게 비록 고달프고 세상이 아무리 지독할지라도 소신을 저버리지 않는 일, 세상살이에 지치고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어도 영악해지려는 마음과 타협하지 않는 일, 어떤 경우라도 자신을 내다버리지 말고 소중히 여기는 일, 스스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긍정의 태도를 견지하는 일, 자신의 가진 한계 속에서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일. 이런 것들이야말로 세레브라이코바가 우리에게 전하는 생의 의의일 테다."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지은이의 말이다.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이란 어쩌다가 우연히 홀로 남게 되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수동적인 상황이 아니다.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시간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나에게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만 보이는 것이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 감정, 생각 그리고 비밀 같은 것들. 사람은 혼자일 때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다. 충실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정직하다는 뜻이고, 진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다. 자기를 보듬는 사람만이 스스로 빛날 수 있고, 자기다움을 견지하는 사람만이 개별자로서의 나를 지킬 수 있으며, 마음에 솔직한 사람만이 삶의 존엄을 수호할 수 있다. 우리는 내 몫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스스로를 원호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란 일종의 인터뷰다. 자신과의 일대일 밀착 인터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완전히 솔직한 사람은 없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 하나 스스로에게 진실하지 못하면 언젠가 비극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 이 감정은 정말 사실인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한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분류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며 한결 가벼워지고 성숙해진다.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은 버리게 되고,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무의미한 행위를 줄이게 된다. 내 마음을 알기 때문에 소모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게 되고, 자기 객관화가 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이해력도 높아진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을 보냄으로써 건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혼자란 모든 것의 기본이다. 일도 사랑도 관계도 삶도 바탕에는 내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외면된 나의 진짜 마음과 마주할 수 있고, 집단체제 속에서 생략된 나의 실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 보고, 혼자 드라이브하고,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고, 혼자 식당에서 식사하고, 혼자 서점에서 책을 읽고, 혼자 공원을 산책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고, 혼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일은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아는 것, 삶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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