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구경꾼들

샌. 2022. 4. 14. 10:44

도서관에서 윤성희 소설가의 책을 세 권 빌려 왔다. 구할 수 있는 작가의 책은 모두 읽어볼 예정이다. 작가의 작품을 연속으로 읽어 볼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얼마 전에 만났던 <날마다 만우절>이었다. 그때 느낌이 강렬하여 윤성희 소설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윤성희 소설가의 작품은 짧은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게 특징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들이 통일된 구도 아래 부드럽게 이어져 나간다. 이번에 읽은 <구경꾼들>은 장편소설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구경꾼들인지 모른다. 소설가 또한 진지한 세상의 구경꾼일 것이다. 책 제목대로 작가는 구경꾼의 시선으로 애틋한 한 가족의 삶을 그려낸다.

 

<구경꾼들>은 '나'의 성장소설이면서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가족 서사다. 이 가족은 외조모를 포함해서 9명이다. 조부모, 부모, 삼촌 둘, 고모, 그리고 '나'가 있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하나에 편중되지 않고 골고루 자기 몫의 이야기가 나누어진다. 가족은 하나 같이 정이 많고 착한 사람들이다. 우여곡절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지만 타자를 향한 분노나 한풀이는 없다. 이미 사라진 대가족의 모습과 함께 심성이 고운 이 가족의 삶은 우리에게 아련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봄꽃 구경을 하러 다닐 즈음에 이 소설을 읽었다. 꽃길에서 나도 꽃의 구경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세상에 대해서도 구경꾼일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타자의 존재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가. 그저 제삼자로서 구경꾼 이상이 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나마도 그림자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구경꾼으로 타자를 바라보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인지 모른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온정이 없다면 이 세상은 사막이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새삼 들게 된 일깨움이었다.

 

책 뒷 표지에 실린 차미령 평론가의 글이다.

 

"한 장의 가족사진. 여덟 명의 사진 속에 그 몇 곱의 사람들이 지나온 자취가 포개져 있는 사진. 한 자리, 한 자리, 비워진 자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간직되는 사진. 수십 통의 편지 수백 통의 엽서 이편과 저편의 삶이 이어져 더이상 우연이 아닌 이야기. 지구 반대편을 찾아 헤맨 끝에 지금 여기서 만나는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 수천 가지의 마음 상처 입은 이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보통 사람들의 온기. 서로를 궁금해하면서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성숙한 배려. 떠난 사람이 남은 사람을, 오는 사람이 가는 사람을, 헤아리는 슬픔. 우리가 다하지 못한 사랑. 한 권의 소설, 나를 스친 모든 인연을 그려보게 하는 소설. 살아온 터와 곁에 있는 사물들의 내력을 생각게 하는 소설. 가보지 못한 낯선 골목과 채 닿지 못한 마음들을 상상하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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