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작가는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 책은 그 이후에 쓴 소설을 모아서 펴낸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레고로 만든 집'을 포함해 아홉 편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소설은 '레고로 만든 집'이었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 더욱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사지마비가 된 아버지와 장애인 오빠를 돌봐야 하는 주인공은 대학교 앞 복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서 집을 날린 뒤 쓰러지고, 어머니는 전세금을 빼서 도망가버렸다.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그녀는 부엌에서 잠을 자며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간다. 그녀는 너무 가난하고 쓸쓸하다. 작가의 소설에는 이런 주인공들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며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굴뚝에 빠진 새끼 고양이를 벽돌을 떨어뜨려 죽이는 장면은 의외이고 섬뜩하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잘 나타내주는 장면 같다.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 와 싱크대에 쌓아두고 읽는 장면도 비슷하다. 한 순간에 무너져버릴 듯 불안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는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비루한 삶을 버텨낼 수 없다는 게 잘 보인다.
복사기에 얼굴을 대고 자기 얼굴을 복사하는 장면이 있다.
"절대 눈을 감으면 안 돼. 주문처럼 몇 번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복사기에 얼굴을 댄다. 빛이 눈을 통과할 때 온몸이 저절로 움찔거린다. 잔뜩 힘을 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나는 눈물이 흐르도록 그냥 둔다."
그리고는 바닥에 놓인 자기 얼굴을 밟고, 종이에 불을 붙여 자신을 태운다. 처절한 자기 절망이며 현실 부정이다. 소설은 뒤로 갈 수록 주인공의 폭발 직전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그린다. 오빠가 만든 레고로 만든 집이 쉬이 허물어지듯 그녀는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이 레고로 된 세상이기를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은 레고 조각을 발로 밟아버리는 장면이다. "나는 발끝에 힘을 주고, 그것을 밟는다. 으스러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제발 이것이 살아내려는 의지의 불꽃이 되기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빈다.
작가의 관심은 소외되고 외롭고 쓸쓸한 인간을 향한다. 이 책 <레고로 만든 집>으로부터 최근에 나온 <날마다 만우절>까지 관통하는 주제다. 다만 작가의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훨씬 부드럽고 깊어지고 따스해졌다. 두 책만 비교해 봐도 시간이 작가를 성숙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나올 작품들에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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