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71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고미숙 선생의 글을 읽다가 꽤 오래전에 본 이 영화가 생각났다. 글 제목이 '스위트 홈은 없다'다. 가족은 '상처의 온상'이라고 말한다. 선생은 화폐, 권력과 함께 스위트 홈에 대한 망상을 우리가 깨뜨려야 할 벽으로 본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에 나오는 가족 이야기는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를 뺨친다. 불륜과 돈, 부모 형제간의 갈등이 아버지 장례식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폭발한다. 메릴 스트립은 약물 중독에 구강암 환자로 나온다. 그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세 딸은 내면에 상처를 갖고 있다. 가시를 잔뜩 품고 있는 선인장 같다. 결국 각자는 뿔뿔이 흩어진다. 서로에게 절망하고 해체된 다음에야 다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여유가 생긴다. 내면의 상처를 극복해야 상처의 대물림도 막을 수 있고, 다시 ..

읽고본느낌 2018.12.17

500일의 썸머

토요일 밤에 EBS에서 우연히 본 영화다. 윗집의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서, 어쩔 수 없이 거실에 나가 채널을 돌리니 마침 이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화에 집중하는 동안은 웬만한 소음은 잊을 수 있다. '500일의 썸머'는 썸머와 톰의 500일에 걸친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둘의 성격은 아주 다르다. 썸머가 활달하고 현실적이라면, 톰은 소심한 반면 순수한 청년이다. 썸머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썸머는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걸 믿지 않는다. 반면에 톰은 천생연분으로서 사랑의 기적을 믿는다. 둘은 다른 점이 많지만 서로 호감을 느끼고 여느 젊은이들처럼 데이트를 즐긴다. 싸울 때도 있지만 곧 화해한다. 그런데 300일쯤 된 때, ..

읽고본느낌 2018.12.11

퍼스트 맨

인간이 달에 첫발을 디딘 지 50주년이 되는 해가 내년이다. 아폴로 11호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1969년 7월, 인류가 최초로 달에 갔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신문에 난 아폴로 기사를 모두 스크랩하면서 나는 우주과학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7월 20일, 암스트롱이 달에 내려서는 모습을 TV로 보던 흥분은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 '퍼스트 맨(First Man)'은 최초로 달에 첫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11호 이야기다. 우주 경쟁에서 소련에 뒤진 미국은 국력을 집중하여 달 정복에 나선다. 1961년에 케네디 대통령은 선언한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We choose to go to the Moon)." 이 장면이 영화에도 나오는데, 달에 가는 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

읽고본느낌 2018.11.28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자서전이다, '환상의 빛'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영화를 만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찍으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을 진솔하게 밝힌다. 실제 영화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고레에다 감독의 성장기나 일대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 모른다. 에는 오직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온다. 영화를 제작한 시대순으로 각 작품을 설명한다.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는지 알게 되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고레에다 감독의 대표 영화는 다음과 같다. 환상의 빛(1995)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공기인형(2009)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읽고본느낌 2018.11.23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고레에다 감독 작품은 거의 다 보았다.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걸어도 걸어도' '엔딩 노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리어리' '환상의 빛' '태풍이 지나가고' '세 번째 살인' 등이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어느 가족'은 유감스럽게도 비켜 지나갔다. 고레에다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상을 정감있게 담아낸다. 화려한 기교나 볼거리는 없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풍경이나 인물의 대사가 가슴을 울린다. 사소한 데서 삶의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평범 속의 비범이랄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지는데, 서정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

읽고본느낌 2018.10.30

바그다드 카페

황량한 모하비 사막 가운데 문제투성이인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여주인인 브렌다의 삶은 고단하고 거칠다. 자식은 천방지축이고, 게으름뱅이 남편과는 매일 싸우는 게 일이다. 총으로 협박당한 남편은 집을 나갔다. 남편과 여행을 하던 독일 여성 야스민은 말다툼 후 트렁크 하나만 들고 길에 남았다. 여관을 겸하고 있는 바그다드 카페를 찾으며 브렌다와 만난다.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때부터 변화가 일어난다. 야스민은 카페를 청소하며 분위기를 바꿔 나간다. 물과 기름 같던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되살아난다.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야스민의 따스한 인간애가 카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변화시킨다. 마치 떠나간 남편에게 화풀이하듯이(?). 그런 야스민이 남편과는 왜 소통이 안 되었는지 살짝 궁금해진다. ..

읽고본느낌 2018.10.05

여왕 마고

올 초 이탈리아에 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메디치가를 설명하면서 카트린에 대한 일화를 재미있게 소개해 주었다. 어떤 여인인지 궁금하던 차에 마침 이 영화를 알게 되었다. 주인공은 카트린의 딸인 마고지만, 카트린도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카트린이라는 인물과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한 영화다. 카트린은 메디치 가문이 쇠락하던 1519년에 태어나서 프랑스 왕자에게 시집을 간다. 당시에는 이런 정략결혼이 다반사였다. 낯선 외국에서 카트린은 외롭게 살아간다. 남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결혼 후에도 그 관계는 공개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남편인 앙리 2세가 죽은 뒤부터 총명한 카트린은 실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녀는 항상 검은 상복을 입었고, 왕인 아들 뒤에서 섭정으로 프랑스를 이끌었다. 영화는 1..

읽고본느낌 2018.09.03

그날, 바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한 과학적 분석이 돋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월호 침몰은 왼쪽 앵커 때문에 일어났다. 무슨 이유에선지 출항한 뒤부터 왼쪽 앵커가 아래로 늘어졌고, 수심이 얕은 곳을 지날 때 앵커가 땅과 충돌하며 항로가 변했다. 이런 현상은 여러 차례 일어나며 누적되다가 사고 지점에서 결정적인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만든 사고 조사팀은 사고 시간과 항로 기록 데이터가 수정되고 조작되었음을 밝힌다. 은폐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도는 가짜다. 실제 항로는 남서 방향, 병풍도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곳은 수심이 얕아 앵커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굳이 이 사실을 감추려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

읽고본느낌 2018.06.17

지금 만나러 갑니다

본 지 두 달이 넘은 영화다. 그때의 느낌을 되살리기에는 시간이 꽤 흘렀다. 눈물을 훔치고 자주 미소를 지었는데, 감상을 바로 기록하지 않으면 놓치는 게 많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이 영화를 봤다. 보면서 참 일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의 원작이 일본 소설이다. 일본에서도 영화로 만들었다 한다. 같은 원작의 두 영화를 비교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죽은 아내가 다시 돌아온다는 상황 설정이 거북했는데 이내 둘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든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운명적이고 간절한 사랑을 보여준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던 둘의 관계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결심으로 완성된다. 자신의 이른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그녀는 동화 같은 사랑을 택한다. 여자 주인공인 손예진은 무척 아름답고 배역에 잘 어울린..

읽고본느낌 2018.06.04

리틀 포레스트

맑고 따뜻한 영화다.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이가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치유와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혜원은 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뒤 고향의 빈집에 내려온다. 아르바이트로 버티던 서울 생활은 삭막했고, 남자 친구와는 삐걱거렸다. 시골집은 고등학생 때까지 엄마와 살았지만, 엄마는 혜원이 대학에 들어가자 본인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고향 마을에는 옛 친구들이 있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이 있다. 혜원은 눈동냥 했던 엄마의 요리를 따라 하며 엄마와의 추억과 함께하면서 행복을 찾는다. 이런 자연주의 삶을 뜬구름 잡는다거나 도피적이라는 등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신주의에 투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자연주의 삶이다. 재벌의 갑질을 비난하지만 내일이면 대한항공을..

읽고본느낌 2018.04.23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만 보면 괴기물로 오해하기 쉬우나, 청소년의 청순한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췌장암에 걸려 1년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소녀와 동급생 남자 친구가 주인공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병에 걸린 같은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네 안에서 살고 싶다'는 표현이면서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남자 주인공(이름이 하루키였다. 이 영화에서는 이름이 잘 불리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은 그저 '친한 친구'라고 부른다.)의 캐릭터가 특이하다. 하루키는 교실에서 급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일종의 왕따 학생이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인 사쿠라는 동급생의 퀸카다. 자신의 병을 감추고 명랑하게 지낸다. 1년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읽고본느낌 2018.03.30

다시 태어나도 우리

라다크를 무대로 하는 다큐멘터리 두 편을 최근에 보았다. 하나는 KBS에서 방송된 '순례' 1편인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이었고, 두번째가 이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였다.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은 라다크에 살고 있던 한 소녀가 승려로 출가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영상미가 특히 아름다웠다. 이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역시 린포체로 지명 받은 앙뚜라는 소년이 승려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앙뚜의 곁을 변함없이 지켜주는 사람은 스승인 우르갼이다.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넘어선 깊은 인간애를 나눈다. 세속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사랑의 교감이다. 주인공은 앙뚜지만 더 끌리는 건 우르갼이다. 히말라야를 닮은 순수하고..

읽고본느낌 2018.01.21

바닷마을 다이어리

따뜻하게 가슴이 데워지며 봤던 영화다. 연말이 되어선지 이 영화가 생각난다. SF 장르를 선호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인간애가 담긴 이런 잔잔한 영화도 좋아진다. 네 여배우의 얼굴만 봐도 미소가 절로 생긴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어쩌면 이렇게 곱게 자랄 수 있는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실감하는 이야기다. 각자 개성은 다르지만 네 자매를 함께 묶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가족을 그렸지만 가족애를 뛰어넘는다. 내가 행복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잘 보여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눈에 익다. 가족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를 잘 다루는 것 같다. 그런데 두 영화 모두 남자 캐릭터는 좀 엉뚱하게 나온다. 보살핌이나 배려를 강..

읽고본느낌 2017.12.30

죽여주는 여자

작년에 나온 영화인데 늦게서야 보았다. 우리 시대 노인의 성과 가난, 소외 계층의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자극적이거나 웅변조가 아니고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죽여주는 여자'는 윤여정 1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의 유명도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한 무게감이 있다. 윤여정이 연기한 소영은 파고다공원에서 노인을 상대로 몸을 팔아가며 살아간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로 '죽여주는 여자'라는 별명으로 통하면서 다른 아줌마의 질시를 받는다.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은 소영은 진짜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죽는 사람보다는 소영의 심적 고통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소영은 일찍 보내주는 것이 그를 도와주는 것..

읽고본느낌 2017.12.01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화려한 미래 세계를 감상하기에 적당한 영화다. 때는 28세기, 우주 도시인 알파 스테이션에는 3천여 외계 종족이 어울려 살아간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기이한 생김새를 한 생명체를 구경하는 재미도 괜찮다. 그러나 종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20세기의 틀을 못 벗어났다. 눈요기에 비해 내용은 별 것 없는 영화다. 특히 진부한 사랑 타령은 영화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감독은 뤽 베송으로 오래전에 봤던 '제5원소'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두 영화의 배경은 다르지만 주제는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을 풀어내는 방식에서는 전작보다 못한 것 같다. 카시안 행성의 빅 마켓, 그리고 우주의 파라다이스라 할 수 있는 뮐러 행성의 풍경은 흥미롭다. 뮐러족은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을 닮았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뮐러족은 그..

읽고본느낌 2017.11.26

아이 캔 스피크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따스하게 그려낸 영화다. 무겁게 다루어질 수 있는 주제인데 유머러스하면서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러면서 심금을 울린다. 짜임새도 훌륭해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나문희 배우의 열연이 뒷받침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영화의 장점은 등장인물 모두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인간미다. 조역으로 나오는 시장 사람이나 공무원 같은 모든 캐릭터가 인간이 품위랄까, 인간다움을 지켜내고 있다.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나옥분 할머니와 가깝게 지낸 시장의 가게 아줌마가 할머니가 위안부로 밝혀진 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거리를 둔다. 그럴 수 있느냐고 찾아가 따질 때 아줌마는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둘이 껴안고 우는 장면에서는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극적..

읽고본느낌 2017.11.06

라이프

화성 탐사에서 가져온 토양을 조사하던 우주정거장의 과학자들이 화성 생명체를 발견한다. 세기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던 생명체는 전기 자극을 받으며 급속하게 성장하여 괴물로 변한다. 그 뒤부터는 우주인과 괴물과의 생사가 걸린 싸움이 시작된다. 우주정거장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공포는 극으로 치닫는다. SF 영화에서 우주 생명체는 대부분 폭력적으로 그려진다. '라이프' 역시 전형적인 스토리를 따른다. 우주 생명체가 공격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 본성의 폭력성과 관계있는 것 같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생명이 진화하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면 조화와 평화를 추구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고등생명체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만약 지능이 높은 우주 생명체가 있다면 ..

읽고본느낌 2017.08.02

에이리언 커버넌트

에이리언 시리즈가 다루는 주제는 거창하다. 인류의 시작과 끝이다. 에이리언은 단순한 우주 괴물 이야기가 아니라, 창조와 파괴에 대한 거대한 서사라 할 수 있다. 엄청한 주제를 그런대로 잘 그려내고 있다. 신작 '에이리언 : 커버넌트'는 인류의 미래에서 AI의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자의식을 갖게 된 AI는 인류는 파멸시키는 데 앞장 선다. 영화에서는 두 AI가 나온다. 선한 월터와 악한 데이빗이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둘은 마치 공모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되든 창조와 파괴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게 되는지 모른다. 결국은 인류를 멸종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 우주를 지배하려 한다. 정확한 결말은 속편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A..

읽고본느낌 2017.07.17

나의 산티아고

바란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달할 수 없는 꿈도 있다. 나에게는 산티아고가 아직 그러하다. 그 길에 서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체력적인 이유는 아니다. 지금은 그저 다른 사람의 체험으로 간접 경험을 한다. 이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독일의 인기 코미디언인 하페가 과로로 병을 얻어 수술을 받고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생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산티아고를 걸은 이야기다. 42일 동안 800km를 걸었다. 산티아고를 낭만적으로만 볼 수 없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하루에 20km 넘게 걸어야 하는 건 고행에 가깝다. 인기 연예인에게 산티아고의 숙소나 음식은 견디기 힘든 조건이다. 더구나 각자 다른 사연으로 길을 찾아온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있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외로움과 정면으로 대..

읽고본느낌 2017.06.19

나, 다니엘 블레이크

현대 사회의 복지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는 영화다. 무대는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영국이다.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탈락하고 소송까지 간다. 실업수당마저 만만치 않다. 그런 과정에서 규정과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공무원 때문에 특히 고통을 받는다. 이 영화는 법과 원칙, 매뉴얼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잘 보여준다. 전 정권에서 법과 원칙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결국 약자에게만 가혹한 결과가 되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블레이크의 말이 의미하는 바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좌절하지..

읽고본느낌 2017.06.05

사일런스

엔도 슈샤쿠의 을 읽은 것이 20년쯤 전이다. 아직도 소설 속 두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기독교인을 판별하기 위해 성화를 밟게 하는 장면이다. 일본말로 '후미에(踏繪)'라고 한다. 기발하면서 잔인한 방법이다. 또 하나는, 배교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해변에 세운 십자가에 묶고 밀물이 되면서 물에 잠겨 익사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고통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전율했다. 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일런스'을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이 장면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가 먼저 궁금했다. 상상과는 일부 차이가 났지만 두 상황의 처절함을 전하는 데는 화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원작을 감동을 지켜낸 좋은 영화였다. 영화의 무대는 17세기 초 천주교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의 일본이다. 일본에 파견되어 전교하던..

읽고본느낌 2017.05.21

패신저스

우주선 '아발론' 호를 구경하는 재미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만하다. 외부 모양도 멋지고, 내부도 우리가 합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거의 빛의 속도로 항성간 비행을 하는데, 영화에서는 새로운 개척지 행성으로 5천 명의 승객을 싣고 자동 항법으로 날아간다. 120년이나 걸리므로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동면 상태다. 수백, 수천 년이 걸리는 우주 비행에서 인간의 동면은 필수적이다. '패신저스'의 독특한 점은 기기 작동 오류로 승객 중 한 사람이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설정이다. 우주선이 운석과 충돌하면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동면 기계는 다시 작동할 수 없다. 새 행성으로 가는 데는 90년이나 남았다. 그는 무인도에 던져진 셈이 되었다. 외로움 속에서 1년을 버티던 짐은 여성 승객 한 명을..

읽고본느낌 2017.04.27

컨택트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나에게는 이 궁금증이 SF를 찾는 이유다. 그래서 이 영화 '컨택트'도 먼저 제목부터 끌렸다. 원제는 'Arrival'인데 배급사에서 만든 'Contact'가 훨씬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느 날 지구 곳곳에 12개의 우주선이 찾아온다. 길이가 450m 정도로 렌즈 같이 생겼다. 그리고 외계인과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는 우주인의 언어와 문자를 해독하는 작업을 한다. 그들의 문자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원형의 무늬인데 우리처럼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 구조다. 사고 패턴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루이스는 우주인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선형으로 이..

읽고본느낌 2017.04.08

아가씨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영화를 본다. 내 나잇대에서는 자주 보는 편에 속한다. 아예 영화에 관심이 없는 친구가 많다.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한국 영화도 이렇게 발전했구나, 라고 가슴 뿌듯했다. 우선 영상미가 세련되고 아름답다. 스토리 전개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다. 배우의 연기보다는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영화다. 돈과 성이라는 인간의 기본 욕망과 파멸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냈다. 레즈비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인간 해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가씨는 이모부에게, 하녀는 가짜 백작에게 철저히 구속된 상태였다. 욕망과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들은 남자로 대변되는 기득권 체제의 부속품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둘이 만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읽고본느낌 2016.12.30

서프러제트

10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는 남편과 함께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여성은 아직 참정권도 얻지 못했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다. 모드는 우연히 거리에서 서프러제트의 시위 장면을 보고 차별적인 현실에 눈을 뜬다. 서프러제트인 동료 노동자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하면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에게 딸이 있다면 그 딸은 어떤 세상을 살까요?"라고 남편에게 하는 질문에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모드는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폭력 시위에 나선다. 감옥에도 가고 단식투쟁도 한다. 그 결과 집에서도 쫓겨..

읽고본느낌 2016.09.10

스타트렉 비욘드

IMAX 3D로 보니까 훨씬 더 실감이 난다. 일반 화면으로 봤던 '스타트렉 다크니스'와 확실한 차이가 있다. '비욘드'를 더 좋게 본 이유는 화면 효과 때문임을 인정한다. 스토리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솔직히 아쉬운 점이 많다. 만화 같은 액션 장면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전투함이 아니라 탐사선이다. 그렇다면 미지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장면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 외계인과 선악 대결의 결말이 뻔한 싸움을 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SF로도 충분히 족하다. 그래도 미소를 짓게 하는 유머와 창의적인 장면도 있다. 적의 벌떼 공격을 음악으로 물리치는 발상이 신선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호를 재건조하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보여주는 장면도 좋았다. 그중에서도 영화에서 ..

읽고본느낌 2016.08.28

곡성

영화 '곡성'을 본 지는 꽤 되었다.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게 목적이었는지 섬뜩한 장면들이 뒤엉켜 그때는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비슷하다. 거북한 장면을 배격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다. 두 대사가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다그치는 아빠에게 효진이 한 말이다. "뭣이 중헌디?" 이 절규는 당시 상황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헛다리를 짚으며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분노인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무당으로 나오는 황정민의 말이다. 왜 내 딸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나느냐는 곽도원의 질문에, 희생자가 되는 건 고기가 미끼를 무는 것과 같다는 대답이다. 악의 세력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가 걸리기를 기다..

읽고본느낌 2016.08.12

크로닉

인간이 감내해야 할 생로병사의 굴레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중년 남자인 데이비드는 말기 환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돌보미다. 환자와 가족 이상으로 일체가 되어 고통을 함께한다. 환자를 자기 아내나 형으로 지칭할 정도다. 데이비드 같은 호스피스와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영화에는 설명이 안 나오지만 데이비드가 돌보미의 삶을 사는 데는 아픈 과거가 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가정은 붕괴되었다. 스스로 아들을 안락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죽음에 동행자가 되려는 봉사는 그런 죄책감에서 나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데이비드는 세 번째 환자에게도 안락사 시술을 한다. 그것이 결국 영화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 병들고 죽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많은 사람이 죽음에 ..

읽고본느낌 2016.05.02

유스

젊었을 때는 젊다는 걸 잘 모른다. 젊음(Youth)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려는 걸까, 쇠락한 노년의 모습과 발랄한 젊음을 불편할 정도로 집요하게 대비시킨다. 그러면서도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여러 단편적인 장면들이 교직 되며 영화를 이끌어가는데 어떻게 느끼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영화다. 돈 많은 사람들이 요양 겸 휴식을 위해 찾는 풍광 좋은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 80대의 두 친구가 묵고 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작곡가며 지휘자로 현역에서 은퇴해서 욕심 없이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바쁘다. 아마 이 둘은 서로 다른 노년의 삶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쪽은 완전히 ..

읽고본느낌 2016.01.22

이터널 선샤인

재미있게 만든 영화다. 사랑의 기억을 지운다는 발상이 독특하다. 그러나 삭제하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좋아했음을 확인하고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인력에 끌려 들어간다. 둘은 다시 만나서 헤어진 비밀을 알게 되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진정한 연인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영화는 난해하다. 시간이 역순으로 진행되고 어느 것이 기억 속 환상이고 어느 것이 실제인지 헷갈린다. 영화가 주는 의미도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끝나고 나면 이렇게 단순한 것이야, 하고 조금은 허전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 영화로는 특이한 소재를 고른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기억을 아무리 지워도 사랑은 남는다. 모든 사랑은 운명적 만남이라고 해야 ..

읽고본느낌 2015.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