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에 EBS에서 우연히 본 영화다. 윗집의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서, 어쩔 수 없이 거실에 나가 채널을 돌리니 마침 이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화에 집중하는 동안은 웬만한 소음은 잊을 수 있다.
'500일의 썸머'는 썸머와 톰의 500일에 걸친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둘의 성격은 아주 다르다. 썸머가 활달하고 현실적이라면, 톰은 소심한 반면 순수한 청년이다. 썸머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썸머는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걸 믿지 않는다. 반면에 톰은 천생연분으로서 사랑의 기적을 믿는다.
둘은 다른 점이 많지만 서로 호감을 느끼고 여느 젊은이들처럼 데이트를 즐긴다. 싸울 때도 있지만 곧 화해한다. 그런데 300일쯤 된 때, 썸머는 톰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썸머에게는 결혼할 상대가 있었다. 썸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톰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둘의 성격 차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톰은 썸머를 잊지 못하고 직장까지 그만둔다.
썸머가 결혼한 후 공원에서 둘이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톰은 이제 다시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에 썸머는 남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는 것, 톰은 자신의 반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비록 헤어졌지만 둘은 500일 동안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확장된 것이다.
경쾌하게 진행되는 이 영화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500일 동안의 에피소드가 선후 구별 없이 등장한다. 며칠 째라는 자막과 그림의 분위기가 둘의 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500일의 썸머'는 영화의 특성을 잘 살렸다. 이 영화가 쉽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누구나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톰 같은 남자, 썸머 같은 여자는 흔하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이별로 끝난다고 결코 의미 없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연애는 많이 할수록 좋은 다다익선이다. 톰은 면접을 보러 간 건축 사무실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 거침없이 데이트 신청을 한다. 다시 1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젊은 시절을 연상하며 재미있게 본 영화다. 인간의 사랑을 별로 믿지 않게 되기까지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밤 12시 30분, 영화가 끝나니 올빼미 가족도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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