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달에 울다

샌. 2018. 12. 5. 12:08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보다 그의 삶이 더 흥미롭다. 처음 쓴 소설이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문단에 등장한 뒤 돌연 시골로 잠적하여 은거에 들어간다.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였다. 인간관계를 끊고, 최소한의 생활비로 버티면서 문학과 마주한다. 그리고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세상과 자신과 당당하게 싸워나간다. 그가 문학을 대하는 자세는 수도승 같다. 반항적이며 아나키스트 기질에 더해진 그의 독특한 생활 철학은 문단의 이단아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최근에 그의 책 두 권을 읽었다. <달에 울다>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다. <달에 울다>는 중편소설이고,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의기소침한 젊은이들에게 주는 에세이집이다. 전에 작가의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다>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세상을 대하는 견해가 당돌하고 파격적이다. 인습과 고정관념을 무시하는 태도가 시원하다. 그런데 <달에 울다>는 완전히 결이 다른 감성 짙은 소설이다.

 

<달에 울다>에서는 일본적 미감이 느껴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비슷하다고 할까, 슬픔이 곱게 단장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이다. 좁은 산골에서 사과밭을 가꾸며 살아간 한 남자의 인생을 특이한 방식으로 그렸다. 병풍의 사계절 묵화 그림을 차용하고, 법사의 비파 소리는 주인공 내면의 심리를 대변한다. 짧은 단문으로 이뤄진 문체는 간결하고 선명하다. 이런 형식을 시소설이라고 하는가 보다. 인간이 짊어진 고독과 슬픔이 묘한 터치로 그려진 소설이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마루야마 겐지의 기질이 잘 드러낸 글이다. 속이 뻥 뚫리도록 시원하다. 목차를 보면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다.

 

1. 부모를 버려랴, 그래야 어른이다

2. 가족, 이제 해산하자

3.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6. 신 따위, 개나 줘라

7.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란 말은 참 좋다. 그 마지막 대목이다.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했다. 한 번 그 맛을 알고 나면 이성으로 자신을 계몽하면서 나아간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굳이 배척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상황에 단호하게 대항하는 것에 삶의 참된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자기 의존'이야말로 궁극의 목적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마음의 나태를 가벼이 여기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을 열심히 쌓아 올리는 것은 지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맨 마지막에는 정신을 스스로 고취할 수 있는 인간으로 떠나야 비로소 고상한 인생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죽을 몸인데, 왜 그렇게까지 겁을 내고 위축되고 주저해야 하는가. 자신의 인생을 사는 데 누구를 거리낄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새로운 마음가짐과 태도를 무기로, 애당초 도리에 맞지 않고 모순투성이인 이 세상을 마음껏 사는 참맛을 충분히 만끽해라. 약동감이 넘치는 그 삶을 향해 저돌적으로 나아갈 때 드높이 외칠 말은, 바로 이것이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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