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역사 교양서다. 이 책은 역사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영어로 표현하면 'History of writing history'다. 수많은 역사서 중에서 대표적인 역사서를 고르고, 그 책을 집필한 역사가와 정신,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설명한다.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왔는지 개관하는 데 유익하다. 동시에 '역사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응답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볼 수 있다.
<역사의 역사>에 등장하는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역사 > 헤로도토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사기> 사마천
<역사서설> 이분 할둔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 레오폴트 폰 랑케
<공산당 선언> 카를 마르크스
<조선상고사> 신채호
<한국통사> 박은식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H. 카
<역사의 연구> 토인비
<서구의 몰락> 슈팽글러
<문명의 충돌> 새뮤엘 헌팅턴
<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이 중에는 읽은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제목만 들어본 정도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필독 교양서로 추천받아서 읽다가 어렵고 지루해서 포기했다. 그 뒤 40대 때 다시 한번 시도했는데 역시 끝까지 가지 못했다. 무엇을 말하는지 결론은 아는데 완독은 못 한 책이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70년대에 전집을 샀다. 열 몇 권으로 된 엄청난 분량의 책이었다. 토인비의 역사관이 박통 시대 이념과 맞아서 정부에서 지원했다는 사실이 이 책에 나온다. <역사의 연구>도 책장만 장식하다가 사라진 책이다.
유시민 작가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역사 공부를 좋아해서 이렇게 책을 낼 정도로 역사에 조예가 깊어졌다. 역사를 보는 눈은 역사를 전공한 사람에 뒤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에 꾸준히 매진하면 일가견이 생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개인의 역량이나 영민함이 보태져야겠지만.
역사서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역사서에는 역사가가 살았던 시대 정신과 역사가의 가치관이 녹아 있다. 역사가에 의해 선별되고 가공되어서 역사서가 쓰인다. <역사의 역사>을 읽으면 그것이 확연히 보인다. 역사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역사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역사의 역사>는 역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이다. 이 책은 작가가 말한 대로 역사를 전체적으로 개관하는 패키지여행에 비교할 수 있다. 잘 차려놓은 밥상이다. 지은이는 역사를 공부하고 이 책을 쓰면서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역사의 역사는 내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를 알면, 시간이 지배하는 망각의 왕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질 온갖 덧없는 것들에 예전보다 덜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자신만의 색깔을 내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