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고레에다 감독 작품은 거의 다 보았다.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걸어도 걸어도' '엔딩 노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리어리' '환상의 빛' '태풍이 지나가고' '세 번째 살인' 등이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어느 가족'은 유감스럽게도 비켜 지나갔다.
고레에다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상을 정감있게 담아낸다. 화려한 기교나 볼거리는 없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풍경이나 인물의 대사가 가슴을 울린다. 사소한 데서 삶의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평범 속의 비범이랄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지는데, 서정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기본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 사이의 갈등과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을 보여준다. 고레에다 감독이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가 가족이다. 영화 제목처럼 '걸어도 걸어도' 좁혀질 수 없는 관계가 가족인지 모른다. 가까이 있으니 역설적으로 더 이해하기 어렵다. 가족이기 때문에 본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게 오해로 쌓이면 어느 순간 폭발하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닌가 여겨졌다. 자식 눈에는 내가 저렇게 비칠지도 모른다. 장남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할머니는 너무 익숙하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우리가 가까이서 만나는 친근한 캐릭터다. 그래서 정겹게 다가오는 영화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할머니 역을 맡은 키키 키린이 지난달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레에다 감독 작품에 단골로 출연한 배우다. 키키 키린은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정하며 인자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니 슬프다. 그녀의 표정에는 내면의 응축된 힘이 느껴졌다.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