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김수영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된다. 이 책은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가 쓴 에세이로 김수영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시인을 처음 만나 결혼하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별하기까지 두 분의 삶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여사는 1927년생으로 용인에서 시인의 생전 집필실을 재현해두고 홀로 살고 있다.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책 제목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는 문학 동지이자 연인으로 살았다. 둘은 보통의 부부관계 이상의 공통된 이상을 갖고 있었다. 시인이 괴팍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여사도 여느 여자와는 다르다. 시인이 '아방가드르'한 여자라고 불렀다는데, 여사도 시인 못지않게 파격적인 면모를 보인다.
여사는 시인을 진명여고 2학년 때 만났다고 한다. 연애 시절의 일화 하나다. 어느 여름날 노량진에서 여의도 쪽으로 같이 걸어갔다. 무더위에 지쳐 있던 차에 섬 한가운데 넓은 웅덩이가 보여서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난처한 표정을 짓던 시인도 알몸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놀다가 멀리 사람 인기척이 들려서 부리나케 옷을 챙겨입고 섬에서 나왔다고 한다. 1940년대라는 시대를 상상한다면 놀라운 일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어보면 김수영은 타고난 시인이자 지사형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어릴 때는 병약해서 성적은 1등이었으면서도 반장 노릇은 못 하고 햇볕이 든 벽에 기대 있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시인의 시작 버릇 중 하나는 시를 완성하면 꼭 부인을 불러서 원고지에 옮겨적게 했다. 시인이 부르면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서재로 뛰어가야 했다. 어떤 때는 장시를 옮겨적느라 저녁을 거르기도 했다 한다. 시의 산고(産苦)를 온 식구가 겪은 셈이다.
여러 가지 못된 기벽을 가진 시인이지만 영혼은 깨끗하고 순결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소박한 생활을 사랑했다. 시인의 심성은 퓨리턴(청교도)이었고, 영원한 퓨리턴트로 살았다고 한다. 이런 점이 김수영을 평생 연인으로 사랑하며 곁을 지킨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밖에 나가면 폭주하던 시인은 술 때문에 결국 풀잎처럼 쓰러졌다. 1968년 6월 15일 문인들과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서강 종점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 집으로 가다가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받혀 사망했다. 시인의 나이 48세였다.
자유와 저항의 상징인 시인의 좌우명은 '상왕사심(常往死心)'이었다 한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 이런 뜻이지. 늘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 살아 있는 목숨을 고맙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어." 시인은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살며 온몸으로 시를 썼다. 그리고 자신이 쓴 시와 같은 삶을 산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