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모든 것은 빛난다

샌. 2018. 11. 7. 10:04

경쾌한 제목과 달리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철학서다. 저명한 철학교수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이 공저자다. 부제가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로, 우리 삶이 다시 빛나기 위해서는 고전 시대의 지혜를 되살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행복한 다신주의자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에 만연한 허무주의와는 딴판이었다. 우리는 신을 쫓아냈지만 빈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성스러운 마법의 경험은 사라졌고, 세계의 경이로움으로부터도 멀어졌다. 생의 반짝이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아레테(arete)'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삶의 '탁월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데 '감사와 경외의 느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현존을 통해 아레테를 경험했지만, 신 없이도 가능하다는 걸 저자는 보여준다. 사는 삶을 위해서는 아레테, 즉 감사와 경이의 능력을 키우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요사이 유행하는 '소확행'도 개인이 찾는 아레테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 멜빌의 <모비 딕>을 심층 분석하며 삶의 빛나는 가치를 찾아낸다. 과거의 강렬하고도 의미 깊은 삶으로부터 어떻게 무기력의 시대로 넘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현대 문명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약간 종교적 색깔을 띄고 있는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우리 삶은 어떻게 다시 빛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빛난다>에서 저자가 든 예가 하나 있다. 커피 이야기다. 만약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실 때 어떤 컵이든, 맛이 어떻든 상관없다면 커피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커피 대신 담배나 마약을 택할 수도 있다. 대체 가능한 것은 작은 의미와 가치밖에 갖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가 잠을 깨우는 기능만이 아니라 새로 시작된 아침에 감사하며 하루를 준비하고 타인과 함게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면, 커피를 마시는 모든 단계와 절차는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것이 저자가 성스러운 의례라고 말하는 것이다.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

 

의미를 갖춘 성스러움은 퓌시스(physis, 자연), 포이에시스(poiesis, 창작)를 지나 메타 포이에시스(meta-poiesis)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메타 포이에시스는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수용하면서 고전적 지혜와 조화를 이루는 태도다. 스마트폰을 애용하다가도 때로는 그것을 과감하게 끄고 손으로 편지를 쓰며 창 밖의 경치를 즐기는 지혜다. 이것이 허무주의 시대에서 삶의 의미 찾기다. 꽤 복잡한 논리적 전개 뒤에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가 감사와 경이를 회복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빛난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면서도 동화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에필로그에 '빛나는 모든 것들'이라는 우화가 나온다. 세상을 보는 시선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 같다.

 

늙고 지혜로운 스승에게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아온 두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이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들은 이제 세상에 나갈 때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너희들의 인생은 복될 것이다."

제자들은 아쉬움과 흥분이 뒤섞인 채 스승을 떠나 각자의 길로 갔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다시 만난 것에 행복해했고, 상대방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으려는 기대감으로 들떴다.

첫 번째 제자가 두 번째 제자에게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 있는 많은 빛나는 것들을 보는 법을 배웠지. 하지만 여전히 불행하네. 슬프고 실망스러운 것들 역시 많이 보았기에 스승님이 충고를 따를 수 없다고 느낀다네. 아마 나는 결코 행복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질 수가 없을 것 같으이. 솔직히 말해서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야."

두 번째 제자는 행복감에 반짝이며 첫 번째 제자에게 말했다.

"모든 것을 빛나는 건 아니라네. 다만 빛나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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