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일런스

샌. 2017. 5. 21. 10:38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읽은 것이 20년쯤 전이다. 아직도 소설 속 두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기독교인을 판별하기 위해 성화를 밟게 하는 장면이다. 일본말로 '후미에(踏繪)'라고 한다. 기발하면서 잔인한 방법이다. 또 하나는, 배교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해변에 세운 십자가에 묶고 밀물이 되면서 물에 잠겨 익사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고통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전율했다.

 

<침묵>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일런스'을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이 장면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가 먼저 궁금했다. 상상과는 일부 차이가 났지만 두 상황의 처절함을 전하는 데는 화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원작을 감동을 지켜낸 좋은 영화였다.

 

영화의 무대는 17세기 초 천주교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의 일본이다. 일본에 파견되어 전교하던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두 신부가 비밀리에 일본에 들어간다. 그들은 탄압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며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체포되어 생사의 극한에 내몰린다. 카르베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고, 로드리게스 신부는 후미에를 하고 배교한다. <사일런스>는 인간의 고통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종교 영화다.

 

세상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는 하느님을 인간은 어떻게 신앙할 수 있을까? 로드리게스는 후미에를 하는 순간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를 밟아라. 나는 고통 가운데 너와 함께 있다." 그러나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순교와 배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순교가 참 신앙이고 배교는 악의 선택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무의미하다. 신앙은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이다. 책과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나는 그렇게 읽었다.

 

조역으로 등장하는 키치치로가 차라리 우리의 모습에 가깝다. 그는 연속해서 배신하고 그럴 때마다 고해를 청한다.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다. 하느님은 그마저도 사랑하신다. '신앙이 좋다'라고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은 과연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그럴까, 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18, 19세기에 일본에 못지않은 천주교 탄압이 있었다. 수많은 신자가 천국에서의 영생을 바라며 순교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유례없이 번성하고 있다. 당연히 수준 높은 기독교 문화나 기독교 정신이 꽃 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깊이가 없다.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기독교가 득세를 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의 현실이 더욱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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