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런 일

샌. 2017. 5. 13. 11:39

지난 정권에서 절필을 선언했던 안도현 시인이 다시 시를 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반갑다. 그러나 절필 기간 중에도 산문집은 여러 권 나왔다. 이 책도 그 중 한 권인데 새로 쓴 글보다는 예전 것을 모은 게 많다. 신선한 맛이 떨어진다.

 

책을 내는 것도 좋지만 담긴 내용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젠 시인의 나이에 걸맞는 사유의 깊이를 보게 되길 바란다. 시인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기대다. 나로서는 <그리운 여우>를 쓸 시절의 작품이 참 좋았다. 전교조 운동으로 해직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낸 뒤 시골 학교로 다시 복직된 때로 알고 있다.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너무 과작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눈길이 오래 머무는 한 줄의 문장이 있다. <그런 일>에 실린 '시작 노트'의 일부다.

 

"시인은 철없이 심심하게 사는 자다."

 

"어제는 사람 때문에 울고, 오늘은 사람도 아닌 것들 때문에 책상을 친다."

 

"녹음이 짙어지면서 산 아래 날아가는 해오라기 날갯짓이 더 하얗게 보인다. 배경의 힘으로 해오라기는 날아간다."

 

"나무는 힘겹게 낙엽을 내려놓는 저 오래된 습관의 힘으로 나무다."

 

"마곡사 가는 길 단풍이 하룻밤만 같이 살자고 붙잡는데 뿌리치고 오느라 서러웠다."

 

"산그늘이 배가 고팠나? 벌써부터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애벌레 같은 길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겨울밤이 두꺼워졌다."

 

"빗소리 들어오라고 창문을 두 뼘쯤 더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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