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영화를 본다. 내 나잇대에서는 자주 보는 편에 속한다. 아예 영화에 관심이 없는 친구가 많다.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한국 영화도 이렇게 발전했구나, 라고 가슴 뿌듯했다.
우선 영상미가 세련되고 아름답다. 스토리 전개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다. 배우의 연기보다는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영화다. 돈과 성이라는 인간의 기본 욕망과 파멸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냈다.
레즈비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인간 해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가씨는 이모부에게, 하녀는 가짜 백작에게 철저히 구속된 상태였다. 욕망과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들은 남자로 대변되는 기득권 체제의 부속품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둘이 만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손을 잡고 담을 타넘어 저택을 탈출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인간은 돈과 권력을 등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집착한다. 하수인이 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백작이 술수를 부려 아가씨의 하인을 고용시키지만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문이 되었다. 동성애는 영화에서 하나의 장치일 뿐 비중이 높지는 않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순정한 사랑이다.
강하고 센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이긴다. 백작과 이모부, 아가씨와 하녀의 결말 부분이 대비된다. 태양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달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 생뚱맞을지 모르지만 괴테의 이 말이 떠올랐다. "여성적인 것이 세계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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