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71

마션

큰 기대를 하고 봤는데 조금은 아쉬웠던 영화다. '그래비티'의 여운이 너무 강한 탓인지 모른다. 화성이라는 무대는 지구 궤도 이상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을 텐데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다. CG를 화려하게 써서라도 화성의 다이나믹한 풍경을 보여줬더라면 하는 미련이 남는다. 과장되어 보이는 모래 폭풍도 그다지 잘 그려낸 건 아니다.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는 자신이 가진 과학 지식을 활용해 생존의 방법을 찾아낸다. 거주 모듈 안에 밭을 만들고 감자도 키운다. 흙에 파묻힌 옛 탐사 차량을 꺼내 지구와의 통신에도 성공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1년 이상 홀로 화성에서 버틴 이야기 때문에 내용 전개의 긴장도가 떨어지는 게 흠이다. 요사이 나오는 우주 영화는 허황된 내용이 아니라 과학적 사..

읽고본느낌 2015.10.25

토리노의 말

외딴곳에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다. 밖은 거센 바람이 불고 건조하다. 종말적 상황이다. 둘은 집안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쪽 팔을 못 쓰는 아버지의 옷을 입혀 주고, 감자 한 알을 먹고, 남는 시간은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다. 한 마디 대화도 없다. 관성적인 절망의 몸짓이다. 나는 이 영화를 인류 종말에 관한 보고서라 생각하며 보았다. 핵전쟁이든 기상이변이든 종말의 때가 닥쳤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물의 물마저 말라 버리자 짐을 싣고 다른 데로 옮기려 하지만 폭풍으로 얼마 가지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철저히 고립되었다. 나중에는 램프도 켜지지 않는다. 기름이 있는데 불이 붙지 않는 건 산소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핵겨울이 닥치기 전 지표면..

읽고본느낌 2015.07.24

와일드

아버지의 음주와 폭행, 가난 속에서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낸 셰릴에게 삶의 버팀목이었던 엄마마저 암으로 죽자 절망한 나머지 방탕한 생활에 빠져든다. 급기야는 남편과도 이혼하고 인생을 포기할 즈음에 셰릴은 마지막 구원처로 고독한 걷기를 선택한다. 미국 서부의 산악지대를 따라 난 PCT 걷기에 나선 것이다. 영화는 셰릴이 94일 동안 이 길을 걷는 모습을 과거의 상처와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위험한 야생의 숲과 사막을 걷는 길은 한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죽음을 각오한 실존적 결단이 아니면 감히 발을 내디딜 수 없다. 셰릴은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감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여정의 종착지에서 결국 그녀는 다시 일어선다. 누구에게나 실패와 좌절이..

읽고본느낌 2015.07.18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 영화가 개봉될 때는 병상에 있었고, 그 뒤에는 메르스 때문에 바깥나들이를 삼갔기에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영화도 때를 잘못 만났는지 예상보다 일찍 간판을 내려서 최근에 작은 화면으로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핵전쟁으로 지구는 종말을 맞고 표면은 사막으로 변했다. 군데군데 소집단을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들은 물과 기름을 차지하려고 끝없이 싸운다. 독재자 임모탄이 지배하는 왕국에서 여전사 퓨리오사가 탈출하면서 쫓고 쫓기는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진다.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면이다. 얼마나 스릴 넘치게 만들어졌는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액션 장면만으로도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칭찬받을 만하다. 겉은 부수고 죽이고 하는 마초적인 영화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데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주인공은 맥스..

읽고본느낌 2015.07.0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개봉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보게 된 영화다. 극장에서 꼭 봐야지 하다가도 놓치게 되는 영화가 많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그랬다. 영화의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케 한 영화다. 영화에서 감독의 역량이 얼마만 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절제와 아름다움이다. 스크린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1930년대의 혼란기, 살인 사건에 연관되어 호텔 지배인인 구스타브와 견습생인 제로가 벌이는 모험담이다. 스릴 넘치는 서스펜스로 만들어질 수 있건만 감독은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돈을 둘러싼 음모, 살인, 전쟁 등 심각하게 다루어질 요소가 아이들 장난처럼 재치있고 가볍게 취급된다. 세상사 너무 무겁게 대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 원색의..

읽고본느낌 2015.03.14

국제시장

울고 웃으며 재미있게 보았다. 상당히 잘 만든 영화다.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영화 '국제시장'이 그린 장면도 시대상의 한 단면이다. 너무 이념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영화 보길 망설였지만 천만이 넘었다는 호기심 때문에 극장을 찾았다. 무엇 때문에 논란이 되는지 확인하고도 싶었다. '국제시장'은 흥남 철수, 독일 광부 파견, 월남전, 이산가족 찾기 등 굵직한 현대사의 중심을 살아간 덕수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흥남 부두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잃어버리고 가장 노릇을 하게 된 소년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그의 일생을 좌우해 버린다. 시대의 격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그 시대를 살아낸 많은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다. 영화는 웃음 코드를 적당히 배치해 놓아..

읽고본느낌 2015.01.2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개봉한 지 1년 된 영화다.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치고 그저께 TV 영화보기에서 2천 원을 내고 보았다. 영화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실직을 대하는 월터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닥친 실직은 우리에게 인생의 종말 정도의 엄청난 충격파인데 월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당당함의 비결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특별한 한 개인의 일일까? 최근에 논쟁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보통 사람들도 월터와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 조정관이나 가족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자세 말이다. 실직을 해도 기본 생활이 보장된다면 누구나 월터처럼 살 수 있다. 더 나은 미래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도 인권에 포함될..

읽고본느낌 2015.01.08

닥터 지바고

신정 오후에 TV로 방영된 이 영화를 거실에서 편하게 보았다. 세 번째 보는 '닥터 지바고'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 본 게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마 학교에서 단체로 갔을 것이다. 그 뒤에 40대 때 다시 한 번 보았다. 같은 영화지만 나이에 따라 느끼는 점이 다르다. 고등학생일 때는 꽤 난해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시베리아 설원의 풍경에 감탄한 것 외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40대 때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기울었다. 아내 토냐에 대한 연민도 컸다. 그런데 60대가 되어 보는 '닥터 지바고'는 혁명과 시대의 격류에 휩쓸린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 시선이 갔다. 모든 인물들의 비중이 거의 대등하게 다가왔다. '닥터 지바고'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 묘사가 뛰어난 영화다. 모든..

읽고본느낌 2015.01.02

목숨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아마 목숨일 것이다. 건강, 돈, 명예, 모두 목숨이 붙어있을 때의 얘기다. 목숨이 끊어진다는 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고, 개인에게는 우주의 종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런 마지막 때와 대면해야 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단 하나의 확실한 진실이다. 영화 '목숨'은 포천에 있는 모현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사십 대 가장, 두 아들의 엄마, 전직 수학 선생님과 쪽방촌 외톨이 할아버지가 그들이다. 암에 걸려서 치유 불가능한 판정을 받고 생의 마지막을 보내려고 호스피스에 들어왔다. 가족의 사랑과 주변의 도움 속에서 이별 의식을 갖는 이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들이다. 가슴 아프고 아리고 슬픈 영화다. 산다는 게 뭔지를 묻고 ..

읽고본느낌 2014.12.10

인터스텔라

상영 시간 3시간의 대작 SF 영화다. 가슴 두근거리며 봤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황당무계하고 폭력적인 SF와는 차원이 다르다. 과학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 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실감 나게 그리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의 인류는 환경 파괴에 의한 재앙에 시달린다. 모래 폭풍이 지표면을 휩쓸고 옥수수 외에는 어떤 작물도 기를 수 없다. 당연히 외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여느 영화의 스토리처럼 외계 행성 찾기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추진된다. 때마침 외계인이 토성 부근에 웜홀을 만들어주었다. 이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탐사대가 파견된다. 우주선이 웜홀로 진입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이다. 웜홀을 통한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물리학에서 밝혀졌다. 최초로 웜홀을 시각적으로 ..

읽고본느낌 2014.11.12

졸업

EBS 명화극장에서 방송된 영화 '졸업'을 다시 보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1970년대 초반의 대학생이었을 때였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개 장면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 영화로 남아 있다. '졸업'으로 인해 더스틴 호프만을 좋아하게 되었고,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스카보로 페어'가 흐르는 가운데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밤늦게 시작된 영화지만 옛날 생각에 잠긴 채 재미있게 보았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지금 보니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측면이 부각되어 보인다. 물질적 풍요를 이룬 미국 중산층의 정신적 공허는 그대로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 세대가 요구하는 현실과 삶의 의미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사랑을 찾아가..

읽고본느낌 2014.10.18

엔딩 노트

회사원으로 열심히 살았던 주인공은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주인공은 갑자기 닥친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세상과의 이별 의식을 준비한다. '엔딩 노트'는 막내딸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찍어서 만든 '아빠의 해피엔드 스토리' 영화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맞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영화의 주인공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장례식 준비도 직접 챙기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에서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특히 손녀들과는 최대한 많이 놀아주려 한다. 눈물보다 웃음이 더 많다. 죽음은 '엔딩'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가는 '오프닝' 같다. ..

읽고본느낌 2014.09.16

트랜센던스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가능해진 미래를 다룬 SF 영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때를 '특이점', 또는 이 영화의 제목처럼 '트랜센던스'라 한다. 얼마 전에 를 읽었는데 책의 내용과 연관지어 보니 영화의 내용이 더 현실감이 났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언젠가는 우리를 이 공상 같은 세계로 이끌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초지능이 만드는 세상이 어떤지에 관심을 가지고 봤다. 중심이 되는 건 역시 나노봇이었는데 이들은 마술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낸다. 파괴된 것은 금방 복구되고 손상된 인체도 완벽하게 복구한다. 질병 없는 영생이 가능한 것이다. 윌은 여러 가지 육체를 입고 등장하는데, 다른 사람의 뇌에도 들어가 하이브리드 인간을 만들어 마음대로 조종한다. 마술 같은 상황이..

읽고본느낌 2014.08.02

콘택트

EBS '일요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오래전에 소설로 읽었고, 영화로도 본 적이 있다. 17년 전에 만든 영화다. 원작은 칼 세이건이 쓴 소설 다. 과학자가 쓴 SF여서인지 황당무계하지 않고 과학적 원리에 충실하다. 보통의 SF처럼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과 이유 없이 폭력만 휘두르는 장면이 안 나와 좋다. 반대로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우주의 신비로 안내한다. 외계인과의 접촉을 다룬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다른 영화로는 '미지와의 조우'도 좋다. 우주에 존재할 지적 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가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다. 앨리는 고집스럽게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탐색하다가 베가성에서 발신한 인공 신호를 포착한다. 그리고 ..

읽고본느낌 2014.06.07

노예 12년

인류의 슬픈 역사를 증언하는 영화다. 불과 100여 년 전에 이런 비극의 역사가 있었다. 흑인은 소유물이었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노예 수입이 금지되어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 1840년대 미국, 가족과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남부 루이지애나로 팔려간다. 나쁜 제도와 인간의 탐욕이 만날 때 얼마나 사악한 일이 벌어지는지 이 영화는 보여준다. '노예 12년'은 한 개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지만, 사회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누가 노예인가? 그렇다면 노예주는 자유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노예주 또한 사회적 이데올로기나 고정관념의 노예일 뿐이다. 영화에 나오는 악명 높은 주인 역시 돈과 정욕의 노..

읽고본느낌 2014.03.11

겨울왕국

애니메이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다. 지난 16일 개봉한 '겨울왕국'은 현재 누적 관객수 700만을 바라보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사람을 불러모으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서 이 영화를 보았다. '겨울왕국'의 매력은 음악에 있는 것 같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은 대부분 음악과 연관이 있다. 특히 깊은 산속으로 숨으며 엘사가 부르는 'Let it go'가 백미다. 세상을 버리고 자기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소녀의 결기와 자신감이 좋았다. 누구의 인생에서나 과거와 결별해야 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Let it go, Let it go / 다 내려놓자, 다 내려놔 That perfect girl is gone / 그 완벽했던 소녀는 이제 없어 Here I stand in t..

읽고본느낌 2014.02.0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6년간 기른 자식이 병원의 잘못으로 뒤바뀐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는 그런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시대 가족의 의미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료타네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며 행복하다. 아버지는 엘리트 회사원이고, 6살 케이타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다. 그러나 친자를 데려오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류세이는 전혀 다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탓으로 자유분방하다. 순종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 료타는 아버지 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는 돈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영화 속 대사가 기억난다. 가난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아버지가 아이들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정의 아이가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 아들이 바라는 ..

읽고본느낌 2014.01.24

변호인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즈음에 이 영화를 보았다. 가슴 찡한 감동이었다. 신인 감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1981년에 일어났던 대표적 용공조작인 부림 사건을 모델로 했다. 노무현 역인 송우석 변호사를 송강호가 맡았다. 그러나 특정인을 넘어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영화였다. 돈만 좇던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 폭력의 실상을 접하고 억울한 피고인들을 위한 변론에 온몸을 던진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정권이 저지른 만행이 그를 통해 드러난다. 이 영화는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하게 한다.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서슴지 않고 용공죄를 만들고 고문을 하는 경찰이 있다. 그는 살인 정권..

읽고본느낌 2014.01.18

1984

젊었을 때 읽은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때는 1984년이 다가올 미래였지만, 지금은 지나간 과거다. 소설에서 그린 것과 같은 1984년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래에 대해 자꾸 비관적이 되는 건 왜일까? 시절이 더 수상해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더 사실적으로 보게 된 탓일까? 는 철저한 감시와 통제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 개인의 마음까지 당이 장악한다. 오세아니아를 비롯한 세 초강대국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계급사회다. 오세아니아는 맨 꼭대기에 빅 브라더가 있고, 그 밑에 당원이 있으며, 하층의 노동자 계급으로 되어 있다. 세 나라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지만 이는 공포를 조성하여 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주민을 통제하기 위해 과거를 조작하고, 아예 인간성을..

읽고본느낌 2013.11.26

그래비티

우주를 무대로 한 영화 중에 이만큼 사실적이고 실감 나게 그린 작품도 없는 것 같다. 보는 영화가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다. 종래의 영화 인식을 바꿀 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포스터에 나오는 것처럼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다. 내용은 단순하다. 우주정거장 사고와 그 이후의 귀환 과정에 대한 얘기다. 등장인물도 단 두 명이다. 궤도에서 보는 우주와 지구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화면에 몰입되면서 마치 내가 우주인이 된 듯하다. 그러나 고요하고 평화롭던 우주는 한순간에 공포로 변한다. 진짜 우주의 모습인지 모른다. 지구 품을 벗어난 곳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중력은 만물을 연결하는 힘이다. 중력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절대 고독의 외톨이다. 중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인간 ..

읽고본느낌 2013.11.17

마지막 4중주

푸가 현악4중주단 네 단원의 인생 이야기가 음악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영화다. 가장 연장자인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숨겨졌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네 명은 서로 스승과 제자, 부부, 친구, 옛 연인 등으로 긴밀한 인간적 유대를 맺으며 25년간 4중주단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 사이의 갈등, 사춘기 자녀와의 마찰, 친구 딸과의 사랑, 건조한 부부관계, 외도, 외로움 등 보편적인 인간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다. 요란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잔잔하게 인생의 모습을 풀어 보여서 감동을 주는 영화다. 어차피 인생이란 삐걱거리고,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튜닝이 안 되어 있다고 연주를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다. 불협화음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읽고본느낌 2013.09.27

엘리시움

서기 2145년의 지구는 전쟁과 환경 오염, 인구 과다로 거대한 쓰레기장 같은 빈민촌으로 변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지구를 도는 궤도에 자신들의 파라다이스를 건설하고 첨단 과학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중의 하나에 무슨 병이든지 몇 초 만에 고치는 의료기가 집집마다 한 대씩 있다. 심지어는 총상을 입은 얼굴도 말끔하게 치유된다. 테크놀로지에 의해 무병장수가 기술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런 상위 1%의 거주지가 엘리시움(Elysium)이다. 미래의 지구 모습이 궁금해 이 영화를 보았다. 굉장히 가능성 있는 예견이다. 지금도 1:99의 사회라고 하지만 130년 뒤의 세계는 양극화가 우주적으로 확대되었다. 엘리시움이 지금의 선진국이라면, 지구는 제 3 세계의 비유가 될 법하다. 밀입국하다가 죽고 추방되..

읽고본느낌 2013.09.05

설국열차

빙하기로 멸망한 지구 위에서 인류의 마지막 생존터인 설국열차가 17년째 달리고 있다. 질주가 멈추면 파멸에 이르는 비유가 현대 사회의 모습과 아주 닮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현재 스스로를 파괴하는 중이라는 지젝의 지적대로 종말을 향한 폭주로 설국열차의 이미지가 딱 맞는다. 계급에 따라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질서와 균형을 강조하는 열차 안은 인간 세상의 작동 시스템과 유사하다. 꼬리칸에 탄 사람들은 체제 전복을 꿈꾼다. 결국 커티스를 중심으로 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앞칸을 차례차례 점령해 나간다. 메시지가 강한 영화다. 나로서는 서구문명의 몰락과 새로운 인류 사회의 탄생이라는 희망으로 읽힌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양 소녀와 흑인 소년으로부터 인류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15세기부터 역사를 주..

읽고본느낌 2013.08.24

지슬

슬픈 영화였다. 영화관 문을 나서니 한낮의 봄 햇살이 너무 밝고 환했다. 그뒤 신록을 걸었고 사람을 만났지만 내내 울적했다. 나는 지금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을 듣고 있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무자비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깔려 죽은 수많은 영혼들을 기억한다. 이 영화는 1948년 11월,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나선 제주도 어느 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3만 명이 희생된 제주도 4.3사건의 시작이었다. ..

읽고본느낌 2013.05.01

나는 누구인가?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가 장발장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독백이다. 그는 자베르 경감을 피해 신분 세탁을 하고 시장이 되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데서 장발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고백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모든 것을 잃는다. 숨기면 시장직을 유지하며 잘 살 수는 있으나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다. 양심의 갈등으로 번민할 때 그가 스스로 묻는 말이 이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는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아 인식에 눈뜰 때 던지는 질문이다. 사춘기 열병의 원인도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고뇌해야 할 화두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으로 주..

참살이의꿈 2013.04.09

클라우드 아틀라스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는 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케일이 큰 영화다. 대신 조금은 난해하다. 나도 두 번째 보고서야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간을 달리 하는 여섯 개의 장면이 교차적으로 나오며 영화는 진행된다. 1. 1849년 남태평양 2. 1936년 스코틀랜드 3. 1973년 샌프란치스코 4. 2012년 영국 5. 2144년 서울 6. 2321년 지구 문명 멸망 후 이 여섯 개의 전혀 다른 배경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회를 반복하며 등장하는, 피부에 별 표시가 된 인물을 중심으로 보면 줄거리의 뼈대를 잡을 수 있다. 1849년의 어윙부터 프로비셔, 레이, 캐번디시(레이와 캐번디시의 연결은 의문), 손미를 거쳐 지구 멸망 후..

읽고본느낌 2013.03.14

로얄 어페어

18세기 후반 덴마크,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는 정략결혼으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에게 시집간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크리스티안은 첫날밤부터 왕비를 실망시킨다. 왕의 주치의로 들어온 독일인 요한은 계몽사상에 영향을 입은 점에서 왕비와 잘 통하게 된다. 왕의 신임 아래 실권을 장악한 요한은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가지만 기득권층의 저항을 받는다. 그는 왕비와의 불륜 스캔들로 체포되어 처형된다. 왕비는 유배되고 곧 병사한다. 개혁은 좌절되고 덴마크는 다시 중세의 어둠에 빠진다. 영화 '로얄 어페어[A Royal Affair]'는 왕비와 요한의 사랑, 그리고 개혁과 실패라는 두 개의 줄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예는 찾아볼 수..

읽고본느낌 2013.01.04

26년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로부터 26년 뒤인 2006년, 가족을 잃은 세 사람이 대기업 회장의 지원 아래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한 복수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미진이 쏜 최후의 총성 한 발과 함께 화면은 어두워진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광주항쟁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가족을 잃고 삶이 망가진 사람들의 사무치는 심정을 국외자인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영화에서 대변하고자 하는 복수혈전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분들의 아픔에 진하게 공감되었다. 미진이 홀로 서울 도심에서 결행한 1차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영화에서 작전 설계자인 김갑세 회장의 말에서 나오듯이 희생자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가해자의 참회일 것이다. 용서와 화해란 가..

읽고본느낌 2012.12.13

피에타

나에게는 무척 거칠게 느껴진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눈 감고 싶은 추악한 현실과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복수를 통해 돈으로 미쳐버린 세상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무대가 된 청계천 공구상가의 어두운 분위기가 영화와 잘 어울린다. 거기는 세상에서 낙오된 패배자들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간다. 주인공 '강도'는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채무자를 불구로 만들거나 목숨까지 뺏는 악마 같은 짓을 서슴치 않는다. 그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장 잔인한 가해자가 된다. 돈의 노예가 된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이다. 세련되게 포장하기는 했지만 본질에서는 다름이 없는 우리들 ..

읽고본느낌 2012.09.23

시간의 숲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읽은 게 이 영화로까지 이어졌다. 은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야쿠 섬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올봄에 개봉되었지만 뒤늦게 알게 되어 영화 자료실에서 찾아 감상했다. 배우 박용우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일본 남단에 있는 야쿠 섬으로 열흘간의 여행을 떠난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 7,200년 된 조몬삼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 배우 타카기 리나를 만나고 둘은 숲과 해변을 거닐며 자연이 주는 고요와 평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내면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위안을 받는다. 자연을 통한 심리 치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수천 년 된 나무들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으로의 여행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사람의 대화보다 야쿠 섬 풍경과 숲, 조몬삼나무를 보는 게 더 흥미로..

읽고본느낌 201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