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덴마크,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는 정략결혼으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에게 시집간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크리스티안은 첫날밤부터 왕비를 실망시킨다. 왕의 주치의로 들어온 독일인 요한은 계몽사상에 영향을 입은 점에서 왕비와 잘 통하게 된다. 왕의 신임 아래 실권을 장악한 요한은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가지만 기득권층의 저항을 받는다. 그는 왕비와의 불륜 스캔들로 체포되어 처형된다. 왕비는 유배되고 곧 병사한다. 개혁은 좌절되고 덴마크는 다시 중세의 어둠에 빠진다.
영화 '로얄 어페어[A Royal Affair]'는 왕비와 요한의 사랑, 그리고 개혁과 실패라는 두 개의 줄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예는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권력 암투로 왕비가 쫓겨나고 궁에 남은 자식이 나중에 왕이 되어 복수하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영화의 중심 스토리는 역시 개혁과 꿈의 좌절에 관한 것이다. 요한은 자신이 믿는 자유와 계몽사상을 덴마크에 실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편다. 개혁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얼마나 잠재우느냐에 달려 있다. 개혁이 시대의 대세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뿐만 아니라 개혁가의 떳떳한 명분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외국인 신분인 요한은 너무 과격했고 왕비와의 불륜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개혁의 실패는 덴마크가 유럽 역사를 주도할 기회를 잃었다. 그 뒤에 독일과 프랑스가 부상했고, 덴마크는 유럽 북부의 소국으로 전락했다. 한순간의 선택이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0여 년 전의 덴마크 역사를 다룬 이 영화의 내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림은 요한이 처형되는 장면이다. 원래는 처형 직전 왕이 사면하는 걸로 알고 안심하고 처형장에 도착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음을 깨닫는다. 군중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모욕한다. 요한은 "나는 당신들 편이다."라고 소리치지만 함성에 묻힌다. 처형대 위에 섰을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 인간의 사랑과 꿈은 날 선 도끼날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요한이 시행했던 개혁 법안은 왕비의 아들인 후임 왕에 의해 부활했다고 영화가 끝난 뒤 자막은 알려준다. 개혁의 씨를 요한이 뿌린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느리게 나아간다. 역사는 수레바퀴에 깔리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평등이 얼마나 많은 피와 고난으로 성취한 것인지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영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요란하지 않고 잔잔하게 잘 전해준다. 동시에 개혁은 몇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 깨인 민중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트레커 팀과 CGV 강변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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