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으며 재미있게 보았다. 상당히 잘 만든 영화다.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영화 '국제시장'이 그린 장면도 시대상의 한 단면이다. 너무 이념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영화 보길 망설였지만 천만이 넘었다는 호기심 때문에 극장을 찾았다. 무엇 때문에 논란이 되는지 확인하고도 싶었다.
'국제시장'은 흥남 철수, 독일 광부 파견, 월남전, 이산가족 찾기 등 굵직한 현대사의 중심을 살아간 덕수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흥남 부두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잃어버리고 가장 노릇을 하게 된 소년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그의 일생을 좌우해 버린다. 시대의 격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그 시대를 살아낸 많은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다.
영화는 웃음 코드를 적당히 배치해 놓아 무겁게 가라앉는 걸 막아준다. 가슴 찡하면서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정주영, 앙드레김, 남진 등이 생뚱맞게 등장하는 건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뻔했다. 말싸움을 하던 덕수 부부가 하기식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국기를 향해 경례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군사 독재의 경직된 체제를 드러내 주는 그나마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노년의 덕수는 고집불통에다 자식들과 대화가 안 되고 화 잘 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주변에도 그런 노인들이 있다. 전에는 나이 헛먹었다고 욕했지만 과거사를 돌이켜 보면 꼭 그럴 일도 아니다. 개인보다는 시대 탓도 있다고 영화를 보면서 느끼게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할아버지 세대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
영화는 더도 덜도 아니고 노부부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다. 여기에 이념의 색깔을 덧씌울 필요는 없다. 다른 시각에서 본 시대의 아픔을 건드리지 않은 건 이 영화의 약점이긴 하다. 그렇다고 과거를 미화하는 영화도 아니다. 월남전 역시 당시에는 영화에서 묘사하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시선으로 평가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요." 이것이 덕수의 마지막 독백이다. 젊은 세대에게 이해받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인생을 산 자부심이 묻어 있는 말이다. 지금 70대가 공유한 경험을 우리는 따스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 식으로 재단하는 건 나쁜 버릇이다. '국제시장'은 천만 관객이 들 만한 영화다. 영화 포스터에 나온 말대로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다. 아내와 롯데시네마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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