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관촌수필

샌. 2015. 1. 12. 11:40

오래전에 읽다가 만 소설인데 이번에는 아주 재미있게 완독했다. 젊었을 때는 이런 소설 읽기가 힘들었는가 보다. 무엇이건 때가 무르익어야 자연스레 된다.

 

<관촌수필(冠村隨筆)>에는 고향의 정경과 인정이 토속어와 함께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문체에서도 고전적인 향취가 난다. 사라져 간 고향과 사람들을 이만큼 서정적으로 묘사한 글도 만나기 어렵다.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특히 충청도 지방의 사투리가 작품의 맛을 더한다. 자전적 소설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어휘를 구사하자면 많은 공부와 노력이 들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의 집은 한산 이씨의 잘 나가는 양반이었다. 증조부는 상주목사를 지냈다. 그러나 육이오 전쟁을 겪으면서 집은 풍비박산이 났고, 작가의 정신적 지주였던 할아버지와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떴다. 좌익 운동을 하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타향에서 성묘를 위해 고향을 찾은 작가는 다른 사람 소유가 된 고향집과 마을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이 소설은 옛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기본 정서로 깔고 있다. 작가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순수한 사람들에 그리움이다. 그러나 근대화가 되면서 고향은 황폐해졌다. 홍수에 휩쓸리듯 한 세계는 무참히 사라졌다. 여덟 편의 연작으로 된 <관촌수필>은 그리움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근대화, 도시화에 의하여 짓밟힌 풍속, 정서, 인간에 대한 하염없는 안타까움이다.

 

여덟 개의 편명은 한자의 사자성어로 되어 있다. 그중에서 옹점이를 다룬 행운유수(行雲流水), 대복이가 나오는 녹수청산(綠水靑山), 석공 신씨의 이야기인 공산토월(空山吐月)이 감동적이다. 시대 배경은 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반까지인데 조용하던 전통 마을이 전쟁을 겪으며 어떻게 변모하고 갈등을 겪는지 잘 그려져 있다. 그 중심에는 역시 사람이 있다.

 

토호였던 양반집 도련님이 보는 시각이 소설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나오는 여러 사람의 다른 시선으로 같은 시대를 관찰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좌익 활동을 한 작가의 아버지 얘기는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데 아무래도 소설이 나온 70년대 사회 분위기 탓이 아닌가 싶다. 시대적 갈등의 중심에 있는 건 누구보다도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눈으로 보는 그 시대의 고뇌와 아픔을 그려도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요사이 인기 있다는 '국제시장'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비슷한 시대를 그려도 영 딴판인 그림이 만들어진다. 이념을 떠나 <관촌수필>에서 제일 인상적인 인물은 옹점이다. 어머니의 몸종으로 들어와 식모로 산 옹점이는 작가의 둘도 없는 누이이자 친구였다. 옹점이의 일생은 힘든 세월을 살아간 우리 누이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재주는 있으나 그네들은 여자라는 굴레와 신분상의 차별로 그늘 속을 살았다. 내 주변에서도 옹점이를 닮은 여인은 여럿 떠올릴 수 있다. 어쨌든 소설에 묘사된 옹점이는 안쓰러우면서도 무척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뒤에 나오는 '여요주서(麗謠註書)'나 '월곡후야(月谷後夜)'는 앞 편에 비해 박력이 떨어진다. 시대적으로도 훨씬 뒤의 이야기들이다. <관촌수필>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어 간 농촌 공동체를 아프게 그린 소설이다. 작가가 <관촌수필>을 쓴지도 어느덧 40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의 농촌 상황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암담해졌다. 이젠 전통적인 농촌의 소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잃어버린 옛 향수에 머물 게 아니라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그려내는 게 남은 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수천 년간 내려온 인간 삶의 양식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격변기를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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