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 지 1년 된 영화다.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치고 그저께 TV 영화보기에서 2천 원을 내고 보았다. 영화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실직을 대하는 월터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닥친 실직은 우리에게 인생의 종말 정도의 엄청난 충격파인데 월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당당함의 비결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특별한 한 개인의 일일까?
최근에 논쟁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보통 사람들도 월터와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 조정관이나 가족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자세 말이다. 실직을 해도 기본 생활이 보장된다면 누구나 월터처럼 살 수 있다. 더 나은 미래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도 인권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경쾌하지만 사진 작가인 숀을 통해 묵직한 인생의 진리를 전한다. 숀과 월터는 정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숀이 월터에게 지갑을 선물하며 그 안에 비밀리에 중요한 필름을 숨긴 건 월터를 각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월터에게 숀은 인생의 스승이 된다. 월터가 숀을 찾아가는 과정은 깨달음의 여정과 비슷하다. 상상이나 관념의 세계에서 체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월터는 히말라야에서 귀한 눈표범을 찍기 위해 잠복 중인 숀을 만난다. 드디어 눈표범이 나타나고, 숀은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뿐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이때 나누는 월터와 숀의 대화가 이 영화의 백미다.
"언제 찍으실 거예요?"
"가끔 안 찍을 때도 있어. 정말 멋진 순간에 나를 위해서.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저 머물 뿐이야."
"머문다고요?"
"그래. 지금 이 순간."
위대한 사진가가 결정적인 순간을 만났는 데도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그래서 숀은 위대하다.
그리고 숀의 또 다른 한 마디,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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