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박광수 씨의 카툰집이다. 그림과 글이 잘 어울려 있다. 만화책 보듯이 넘기면 한 시간이면 다 볼 수 있지만, 짧은 글이 주는 여운이 길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삶에 대한 통찰이 반짝이는 글과 그림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게 바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다. 전에 <광수생각>, <악마의 백과사전>도 재미있게 보았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은 살면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간결한 그림과 더해져 작가의 생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요양원에 계신 모양이다. 그로 인한 가족의 아픔이 '안단테, 안단테, 안단테'에 잘 그려져 있다.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낸 아부지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순례자처럼 병원을 돌며
모아 놓은 수면제를 비둘기처럼
밤마다 한 알씩 쪼아 먹는다.
엄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아들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들은 아부지에게 잠을 빌린다.
다섯 알이면 다섯 밤은 거뜬하게
잘 수 있을 거라는 아부지의 말.
나는 오늘 아부지의
다섯 밤을 빌려왔다.
징검다리가 놓인 강가에 한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징검다리를 건너 건너편으로 간다. 중간을 지나면서부터는 중년 여인이 되어 등에는 아기를 업고 있다. 건너편에 건너가서는 소년과 함께 서 있다. 할머니가 되어서는 다시 반대편으로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소년은 뒤에 남고 어머니가 지나간 징검다리는 사라진다. 10컷으로 그려진 그림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치매란
자신이 젊은 시절 애쓰며 건너온 징검다리를 되돌아가는 것.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건너온 징검다리를 하나씩 치우는 일.
그때 옆에 있는 당신은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들.
그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뚝방에 서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일. 밝게 웃어주며 날 천천히 잊어달라고 비는 일. 안단테, 안단테....
작가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걸 '어쩌면'이라는 단어로 나타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기막힌 바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삶은 견뎌내고 지켜보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토닥이며 진실되게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따스한 위안과 희망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