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에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임한 지 2년이 되는데 고작 두 번째였다. 이것만 봐도 처음에 장담했던 국민과의 소통은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제 불통의 이미지로 굳어 버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보다가 '역시나'라는 실망에 TV를 끄고 말았다. 대통령의 발언 내용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기자회견 전 모두 발언을 할 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팻말이었다. 거기에는 'the BUCK STOPS here!'라는 생소한 영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뜻이 무엇인지, 왜 저런 영어 문장을 내세웠는지 궁금했다. 'buck'을 사전에서 찾아봐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얼핏 든 느낌은 '내 앞에서 헛소리하지 말라!'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갈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었다. 'the BUCK STOPS here!'는 원래 트루먼 대통령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트루먼은 자신의 집무실 책상 에 이 문구를 적어두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되새겼다. 작년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이 문구가 적힌 명패를 선물했는데 이번에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 할 때 뻔뻔하게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옛날 미국 대통령의 좌우명을 영어 그대로 전 세계에 전파되는 영상으로 보여주다니, 웃기는 짬뽕이 아닐 수 없다. 바이든의 박수를 받으며 'American Pie'를 열창할 때부터 싹수가 보였다. 차라리 우리말로 옮겨서 보여주든지. 본인으로서는 책임과 과단성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풍기고 싶었나 본데 내가 볼 때는 완전 역효과였다.
또 하나, 좌우명은 제가 보는 것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팻말의 문구를 밖으로 향하게 놓은 것은 자기 과시용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마치 집의 가훈을 대문에 걸어 놓는 꼴불견과 같다. 어찌 대통령만 탓하겠는가. 보좌하는 참모진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본다. 좋게 해석하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의도였을지 모르나 언사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은 그럴듯하게 누가 못하겠는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도리어 반감만 깊어진다.
그저께 '부처님 오신 날'에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늘 부처님의 마음을 새기면서 올바른 국정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리고 민생의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국민의 행복을 더욱 키우겠다."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할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평화로울 때 우리 사회도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금과옥조 같은 말씀이시다. 제발 그렇게 해 주시면 좋으련만. 하지만 별 기대를 할 수 없는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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