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명언

PBA가 생기면서 우리나라는 당구의 중심국이 되었다. 그러나 당구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관계로 용어는 대부분이 일본어다. 가라꾸, 나미, 다마, 다이, 레지, 무당, 빠킹, 삑사리, 오시, 짱꼴라, 쫑, 황오시, 후루꾸, 히까기, 히끼, 히네루, 히로 등 많다. 이중에 다수는 지금도 당구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빨리 바로잡아야 할 텐데 습관의 힘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용어만이 아니라 당구 이론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보인다. 물리 이론으로 설명하려 하는데 엉터리로 적용하는 게 많다. '힘'이나 '충격량', '운동량'에 대한 기본 개념이 결핍되어 있으면서 공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니 억지가 심하다. 그렇다고 당구가 이론으로 되지도 않는다. 이론에 정통한 사람이 당구를 잘 친다면 물리학자나 수학자가 당구 고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당구는 참으로 복잡미묘한 운동이다.

 

어쩌다 보니 당구 모임의 연락책을 맡고 있다. 모이는 일시와 장소만 공지하기에는 밋밋해서 당구 명언을 하나씩 첨부하면서 설명을 붙이고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당구 명언으로 정리된 것은 따로 없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말을 모아보았다.

 

 

1) 당구는 머리로 치는 게 아니다. 큐로 치는 것이다.

- 옛날에 당구장 사장은 가르치다가 답답하면 말하곤 했지. "대학 물 먹은 거 맞아?" 아쉽다. 그때 이 말을 해 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2) 당구는 스토리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서 타깃을 겨냥하라.

- 뜻대로 한 되는 건 당구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돌발 키스가 생기고 삑사리로 헛발질을 한다. 그게 당구나 인생의 매력인지 모르지만.

 

3) 큐대의 곧은 마음

    당구대의 넓은 마음

    당구공의 둥근 마음

    쵸크의 돕는 마음

- 당구를 치면서도 마음 공부를 할 수 있구나. 하긴 당구만이겠는가. 가슴만 열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내 스승인 것을.

 

4) 초구 이외에 똑같은 배치는 없다.

- 당구에서 경우의 수는 어느 정도일까? 당구대에 공을 빽빽이 채우면 1058개가 들어간다(대대 기준). 공 세 개가 배치될 경우의 수는 '1058P3'이겠지. 계산하면 대략 11억 8천만이 되네. 이 정도만 해도 평생 당구를 친들 같은 배치가 나올 확률은 거의 제로겠지. 심심풀이로 계산해 봤음.

 

5) 당구는 삼위일체(두께, 당점, 스트로크)의 예술이다.

- 예술 야구? 예술 골프? No! 그러나 '예술 당구'는 있다.

 

6) 하수는 눈 앞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고, 고수는 두세 수 뒤를 내다본다.

- 사부는 말했지. "계획을 갖고 쳐라!" 아직도 요원하니 나는 영원한 하수인가 보다. 그런들 어떠리. 하수도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는 것을.

 

7) 나는 당구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 천재 당구선수였던 이상천의 말이다. 어느 분야든 내공이 깊어지면 사물의 핵심을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게 되는가 보다. 물리학자는 이론을 통해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우리는 얼마큼 삶이 쌓여야 인생의 속 깊은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을까. 갑남을녀들이야 겉핥기로 이 생을 스쳐 지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