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024 당구 시즌을 마감하는 월드 챔피언십 결승이 어제 끝났다. 남녀부 우승자는 조재호와 김가영 선수였다. 당구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선수들 경기를 구경하는 것은 좋아한다.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승부를 벌이는 선수들의 긴장된 모습과 호흡에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잘 쓰이지는 않지만 호승심(好勝心)이라는 말이 있다. 승부욕과 비슷한 말로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을 뜻한다. 승부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인드다. 아마추어라면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호승심이 없다면 프로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신을 응원하는 팬에 대한 프로의 사명이기도 하다.
승부를 가려야 할 때 이기려는 마음은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이다. 친구들과 재미로 하는 당구 게임이라도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은근히 호승심이 발동한다.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꼭 이겨야겠다는 욕심이 일어난다. 기껏해야 게임비를 가지고 다투지만 지면 짜증이 나고 이기면 엔도르핀이 팡팡 솟아난다. 이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 하물며 과실과 명예가 걸린 프로라면 오죽하겠는가. 프로들의 포커페이스는 정말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기원부터가 무수한 정자들의 경쟁에서 시작되었다. 3억 대 1의 경주에서 승리한 것이다. 난자라고 다르지 않다. 여자아이는 약 200만 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중에 하나의 난자가 선택되고 정자와 만나게 된다. 심지어는 쌍둥이들조차 어머니 뱃속에서 서로 싸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정도면 경쟁과 호승심은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누가 이 본성을 이길 수 있겠는가.
TV를 통해 프로의 경기를 보고 응원하는 것은 내 속에 숨어 있는 호승심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짜릿한 승부를 원하고, 승부욕이 강한 선수를 보면 나도 함께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별나게 보이더라도 승부욕을 강하게 표출하는 선수가 나는 좋다. 너무 도사차럼 초연한 선수를 보면 김 빠진 맥주를 마시는 것과 같다.
어느 바둑 선수가 중요한 시합에서 패하고 난 뒤 기자들 앞에서 "분하다"라고 하며 감정을 격정적으로 드러낸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 그 선수가 좋아졌다. 또 한 선수는 결승전에서 유리했던 국면이 실수로 뒤집히자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뺨을 때리며 자책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여과 없이 보였다.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선수의 가식 없는 순수한 마음씨가 읽혀서 오히려 감동이었다. 혐오스럽지 않는 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승부사에게는 무엇보다 냉정함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이번 당구 월드 챔피언십 여자부 결승에서는 김가영과 김보미 선수가 대결했다. 나는 약자를 응원하는 편이라 이때껏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김보미가 이기길 바랐다. 중반까지는 3:1로 리드를 했으나 역전을 당해 3:4로 졌다. 쉬운 옆돌리기 하나를 놓친 게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꾸고 말았다. 옆에서 위로하는 동료는 우는데 막상 당사자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속울음이 없었겠느냐마는 좀 더 감정 표현이 강했으면 본인을 위해서도 낫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를 할 때는 얼음처럼 차가워야겠지만 경기를 마친 뒤에는 기쁨이나 아쉬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김보미 선수가 다음 시즌에는 꼭 우승 목표를 달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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