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0.72명으로 발표되었다. 역대 최저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값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것도 1보다 한참 밑이다.
작년에 출생한 신생아 수는 23만 명이었다. 2013년에 43만 명이였으니 10년 만에 절반 가까이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부터 자연감소하기 시작했다. 산술적으로 보면 출산율이 2명은 되어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이런 출산율이라면 앞으로 인구 감소 경향은 가속화할 것이다.
출생율을 높이기 위해 온갖 정책을 내놓지만 백약이 무효인 것 같다. 그만큼 이 땅에서 살기가 팍팍하다는 뜻이다. 자식을 낳아 기를 엄두가 나지 않고, 살아가는 고생을 자식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돈 몇 푼 쥐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정도면 국가 소멸을 염려해야 한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일본도 낮은 출생율 때문에 국가 차원의 비상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의 출생율은 1.3명으로 우리 입장에서 보면 배 부른 타령으로 들린다.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하면 경제 성장의 포텐셜이 감소한다. 성장 동력을 잃으면 후진국으로 떨어질까 봐 염려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산업 사회의 논리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관점을 달리 해서 지구 생태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구는 더 줄어들어야 마땅하다. 언제까지 인구가 늘어나면서 성장이 계속되어야 할까. 지구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인류 문명이 지속 가능하자면 제살 깎아먹기식의 무한정한 성장 이데올로기는 멈춰야 한다.
한때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환경과 성장은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는 포기되어야 한다. 우리가 자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낮은 출생율이 어쩌면 자연이 인류에게 주는 축복인지 모른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 낡은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은 버려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제2 기계 시대에는 우리가 이때껏 신봉하고 있던 노동 윤리나 일에 대한 개념이 폐기될 것이다. AI와 로봇으로 대치되면서 인간의 직업은 대부분 소멸한다. 육체 노동을 위한 많은 인구가 필요하지 않다. 인구로 성장을 지탱하고 발전을 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세계의 기본 틀이 변하는 시대에 출산율 감소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장보다는 분배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아 과밀화되어 있는 국가다.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리다 보니 온갖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 출산율 저하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미래는 인간의 삶의 양식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변할 것이다. 긴 눈으로 본다면 출산율 감소를 너무 비관할 것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급격한 변화는 혼란을 초래한다. 출산율 감소도 적절히 조정될 필요는 있다. 이것은 정책의 문제다. 출산율 증가에만 목매달지 말고 출산율 감소라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면 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린다면 출산율 감소는 오히려 새 시대를 맞는 긍정적 요소가 되는 건 아닐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제1 기계 시대를 이끈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은 이제 종언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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