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쿼바디스'에서 보았다
고대 로마 원형 경기장
사자 무리에 맞서
공포에 떠는 기독교도들에게
나이 든 여성이 달래는 말
"두려워 마요. 금방 끝날 거예요"
이때의 죽음은 자비
빨리 끝내주는 것이 은혜가 되는,
절망적인 병과 마주 섰을 때
고통과 공포에 떠는 환자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를 가장 사랑하는 이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 서야 할 시간에
연약한 영혼을 달래주는 것은
최후의 은총
짧은 죽음
- 짧은 죽음 / 유자효
품위 있는 죽음이라거나 웰 다잉 같은 말을 이제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노화와 죽음이 어떻게 한 인간을 허물어뜨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치매가 찾아와서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고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진다. 존경받던 선배 한 분은 이태째 정신줄을 놓고 있다. 옆에 있는 딸도 알아보지 못한다. 사신(死神)은 인간의 모든 것을 참혹하게 뺏아간다. 곱게 늙기도 어렵지만 곱게 죽기는 몇 배 더 어려운 일이다.
시인의 말대로 짧은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은총인지 모른다.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서야 할 시간, 그 시간으로 가는 과정이 순하고 짧기를, 미약한 존재인 우리가 드릴 최후의 기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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