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고추 심기

샌. 2012. 5. 8. 11:09


고향에 내려가 고추 심는 어머니 일을 거들었다. 어머니가 미리 골을 내어 비닐을 씌어놓았기에 고추를 심고 지주를 세우는 일만 하면 되었다. 올해는 고추모 800포기를 심었는데 해마다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점점 약해지는 탓이다. 한창 많았을 때는 2,000포기 가까이 키웠다.

 


 

어머니가 농작물을 가꾸는 정성은 자식을 기르는 이상이다. 마을의 이웃들도 감탄할 정도다. 홀로 되셔서 삶의 낙을 농사일에 붙이셨다. 작물 가꾸는 게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말씀하신다. 힘이 들어도 얘들이 자라는 걸 보면 보람이 있고 재미있다신다. 또 정성이 그만큼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놀아도 밭에 나와 놀아야 한다며 하루도 밭 출입을 거르는 일이 없다. 어머니가 고추모를 만지는 모습을 보면 꼭 아기를 돌보는 것 같다.

 

농사 전문가인 어머니에게 비닐을 씌우지 않고 농사 지을 수는 없는지 물어 보았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란다. 병들고 지실 들고, 또 힘은 힘대로 들면서 소출은 삼분의 일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에는 어떻게지어 먹었는지 모르겠단다. 생태적 관점의 농사짓기는 어머니에게 요원한 이야기다.

 


어설픈 농사꾼 흉내를 내 보았다. 어머니의 몸뻬바지가 내 노동복이다. 아줌마들이 몸뻬 옷을 좋아하는 이유를 입어보니 알겠다. 그런데 '몸뻬'는 일본말로, '일바지' 또는 '왜바지'라는 명칭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쇠와 나무로 된 지주를 300개가량 땅에 박았다. 대략 2,000번의 망치질을 한 것 같다. 양손을 번갈아 썼는데도 아직 손목이 아프다. 허약한 도시인이 안 하던 일을 하려니 몸이 놀랄 만도 하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적응이 되면 요령도 생기고 수월해지는 법이다. 농사에 생계를 맨 게 아니라면 내 체력에 맞는 정도로만 일하면 된다. 농촌에서 흙과 놀면서 적당한 노동으로 산다면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싶다.

 


밭 가운데에 샘이 있다. 아주 심한 가뭄이 아니면 물이 마르지 않는다. 여기서 나오는 물이 아니라면 농사짓기가힘들었을 것이다. 여기는 집을 지어도 좋은 터다. 산이 말밥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정남향 자리로 전망도 좋다. 전원주택 대여섯 채가 넉넉히 들어설 수 있다. 만약 이런 터가 수도권에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저녁 무렵에는 마을 앞 서천 냇가를 산책했다. 서천은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고향 마을과 영주 시내를 지나 무섬마을에서 내성천과 합류한다. 그리고 예천군 삼강에서 낙동강과 합해져 거대한젖줄이 된다.

 

여기는 다행히 4대강인지 뭐니 하는 인간의 횡포가 닿지 않았다.냇가 풍경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래도 자전거길은 만들어져 있다. 둑방길을 시멘트로 바르고 정비했다. 이 정도라면 강에 주는 피해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정작 시골 사람은 거의 다니지 않지만 나 같은 뜨내기는 가끔 산책길로 이용한다.

 


바람을 쐐주려고 집에서 기르는 개를 데리고 나갔다. 애완용인데 그냥 밖에 매어두고 키운다. 사람만 보면 같이 놀고 싶어 깽깽거린다. 사랑에 굶주려 있지만 함께 놀아줄 사람이 없다. 어머니도 개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다. 주인을 잘못 만나 이놈도 고생이 많다.

 

백수 신세가 되니 느긋하게 어머니를 도울 수 있어 기뻤다. 다른 데를 기웃거릴 게 아니라 자주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 일손을 도우며 효도하고, 내 삶의 에너지도 충전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도피가 아니라 좀 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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