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년만에 간 단임골

샌. 2012. 5. 1. 22:16


2년만에 정선 단임골에 갔다. 리 선생님 내외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모든 풍경이 그 자리 그대로 있었고, 사람의 향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착한 날 오후에는인도에서 온 귀한 차를 나누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따가운 햇살이 사그라진 저녁 때에 리 선생님 안내로 집 주변을 산책하며 꽃과 나무 설명을 들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도재미난 얘기는 끝이 없었다. 두 분이 결혼하게 된 사연은 다시 들어도 감동이었다. 두 분과 함께 있으면늘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땅 한 평, 돈 한 푼 없지만, 이 모든 것을 마음으로 소유한 두 분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두 분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알지 못하지만 여기에 오면 내병든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햇살이 눈부시게 환한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깼다. 다른 사람들이 산책하러 나가는 부지런한 소리를어렴풋이 들었다. 게으름을 부려도 누가 탓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멋진 일이리라. 이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앞산을 산책하다가 산괴불주머니의 넓은 군락지를 만났다. 산 속에 아무도모르는 비밀의 화원이 펼쳐져 있었다.

 


막 새 잎이 돋아나는 가래나무의 정갈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리 선생님께서 가꾸시는 밭이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여기서는 모든 작물이 풀과 함께 자란다.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땅을 갈아엎지도, 비닐을 쓰지도 않는다. 태평농법, 또는 자연농법이라 부르는 농사법이 실천되고 있다. 이는 누구에서 배운 게 아니고 선생님 스스로 자연과 공존하는 가운데 터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게으름뱅이 농사라고 비웃는다며 씁쓸해하셨다. 농사의 관점을 돈에 두느냐, 자연과 생명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문명과 과학기술 비판 등 많은 점에서 선생님과 의견을 같이 한다. 지금은 자연도 병들고 인간도 병들어 있다. 모두가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원점으로 회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선생님의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삶은 노자 사상과 바탕을 같이 하고 있다. 무위자연의 삶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도리어 자연에 부담을 주는 일을 많이 한다. 제발 좀 나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헤어지기 전 기념사진을 남겼다. 봄의 한가운데 날이었다. 앞으로도 선한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잔 방 벽에 이 시가 붙어 있었다. '상처의 향기'가 굵게 쓰여 있었다.

 

어느 분이 봄소식 전하려고 하늘에서

풀쩍 뛰어내리다 바위에 상처를 입어

산등성이마다 피가 번져 진달래여요

신록은 그것이 산불이 이는 줄 알고

출렁출렁 능선으로 파도쳐 가서는

골짜기 골짜기마다 산벚나무 가지에

하얀 물거품을 팝콘처럼 얹어 놓았어요

지난겨울 조용하고 순결한 것의 무게가

우두둑 소나무 우듬지를 꺾고 간 자리에

철철 흘러내리는 송진, 그 상처의 향기

긴 겨울 무게에 몸이 얼어 찢어진 나도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놈이겠군요

 

- 봄 병 / 공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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