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영장산을 지나 태재고개까지 걷다

샌. 2012. 5. 3. 20:30


영장산과 태재고개는 성남과 광주를 가르는 검단지맥 위에 있다. 더 내려가면 불곡산까지 이어진다. 영장산에는 두 차례 올랐지만 오늘은 지맥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보기로 한다. 더없이 상쾌한 날씨다.

 

지하철 이매역에서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영장산은 400m급의 산이지만 오르는데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산길이 꽤 길기 때문이다. 산에는 평일이어서 사람들과는 드문드문 만난다. 얼마 전에 J 선배와 만났을 때 요사이 등산을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단호히 안 한다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평일에 혼자 산을 찾으니 자신이 너무 비참해지더란다. 일이 없는 백수 신세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창피하다고 말했다. 지금 나는 홀로 산길을 걸으며 무척 행복하다.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옛 동료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날 의식하지도 않겠지만 혹 안쓰러워한들 어떠리. 내 마음은 유유자적 즐겁기만 하다.

 

 

 

영장산에서 태재고개로 가는 길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비슷한 고도의 산줄기가 6.2km나 뻗어 있다. 놀멍쉬멍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산길이다.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서늘하다. 초록의 바다에 잠겨 두 눈을 감으면 맑은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이런 때면 온 우주를 내가 품은 것 같다. 삼라만상과한몸이 된다. 더는 바랄 것도 없고 소유할 것도 없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잠시 쉰 것을 제외하고는 느린 걸음이나마 계속 걷는다. 영장산에서 태재고개까지 가는데 두 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산길에는 특히 각시붓꽃이 많다. 자리한 것으로 보아 인위적으로 식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걸었던 반대쪽 남한산성까지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태재고개에 이르다. 집과 차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태재고개는 분당과 광주를 넘나드는 고개인데, 보이는 쪽은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다. 이 고개 넘어 오른쪽 방향에서부터 분당이 시작된다.

 


분당 방향으로는 열병합발전소 굴뚝이 보인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주변에 전원주택 단지가 있는데 생활에 지장이 클 것 같다. 그저께 친지의 새로 지은 전원주택에 들렀다. 인근에 비행장이 있어 이륙하는 전투기 소음이 대단했다. 그런데 본인들은 막상 이것도 체크를 못하고 집을 지었단다. 조용한 시골에 내려왔는데 도리어 더 소음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 또, 옆집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분쟁도 생겼다고 했다. 소음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니다.

 

요사이 살 터를 보러 다니지만 솔직히 겁이 난다. 어떤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여주 생활에서도 체험했던 바다. 새로 일을 벌이기보다 가볍게 살기를 권하는 사람이 많다. 세컨드 하우스의 관리를 제대로 못 한다면 도리어힘들고 피곤해질 수 있다. 차라리 이곳저곳에서 전세살이를 하며 부담 없이 사는 게 나을지 모른다.

 

원래는 태재고개를 지나 불곡산까지 걸을 계획이었지만 연결되는 들머리를 찾지 못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이매역에서 여기까지 4시간이 걸렸다. 산길을 10km쯤 걸었을 것이다. 봄의 한복판에서 행복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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