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115

눈 덮인 죽령 옛길을 걷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사라졌던 죽령 옛길이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년전에 들었는데, 이번에 설을 쇠러 고향에 내려간 길에 그 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길은 희방사역에서부터 죽령 꼭대기(689 m)까지 소백산의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총 길이는 약 3 km 정도로 한 시간이면 넉넉히 오를 수 있다.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죽령은 영남과 기호지방을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달라왕(阿達羅王) 5 년(158 년) 3 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는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아달라왕 5 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갯마루에 죽죽을 게사하는 사당[竹竹祀]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죽령은 개척년대가 사서에 분명히 전하는 유..

사진속일상 2009.01.29

어머니와 김장을 하다

헝제들이 고향집에 모여서 함께 김장을 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는데 올해는 서로 일정이 어긋나 같이 모이지를 못했다. 동생들은 지난 주말에 내려갔고, 나는 이번 주에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한 일이란 빈 김치통을 들고가서 가득 채워 돌아오는 일밖에 없었다. 같이 속을 버무리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디모도'나 하라고 해서 배추를 날라주고 통을 옮기는 등의 잔심부름만 했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디모도 역할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 김장을 하는 사람은 고무장갑을 낀 손에 양념도 잔뜩 묻어있어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만 일의 능률이 오르게 되어 있다. 고향에 내려가면 싣고 오는 것이 늘 차로 가득이다.이번에도 김장 외에 쌀, 당근, 파, 무우, 배추, 밑반찬, 기름, 장, 콩 등 어머니가 직..

사진속일상 2008.11.22

쓸쓸한 추석

외할머니는 끊임없이 오지도 않는 사람을 찾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쇠락해 가는 것이 어디 고향집 뿐이랴. 내 마음 속 풍경은 한없이 황량하고 쓸쓸하다. 내 혼자도 감당하기 힘든데 고향에 오면 짐이 몇 갑절이나 무겁다. 그러나 어찌 하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을, 세상사가 그러한 것을...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빈 말이 아닐 것이다. 미래에는 뭔가 달라지리라는 희망에 속고 사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 힘든 현실을 감내하는 힘도 거기에서 나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무게는 점점 더 버거워지고 숨가쁘다.삶의 쓸쓸함 앞에서스산해지는 가을이다. 저녁에 길을 나섰다. 철 없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뛰어다녔던 그 길이다. 차례를 지내면서 ..

사진속일상 2008.09.15

고향에서 지낸 일주일

7/28 혼자 내려가는 걸음은 쓸쓸하다. 고향집에는 아무도 없다. 늘 그랬듯 텅 빈 집이다. 서먹하고 미안하고 허전하다. 가슴으로 찬 바람이 지나간다. 자격지심 탓인지 이번엔따스한 모성이 더욱 그리워진다. 7/29 쉬다. 짬짬이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을 읽다. 화단의 배롱나무 꽃이 환하다. 7/30 걷다. 길 위에 서면 그나마 생기가 난다. 햇볕 따갑지만 두려운 건 그게 아니다. 홀로 걷는다는 것은 철저히 혼자가 되면서 또한 밖으로 자신을 여는행위다.그냥 걷다보면 꽁꽁 닫아놓았던 마음의 울타리가허물어진다. 자책도 원망도 눈 녹듯 사라진다. 기억이란 참 묘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어느 때 이 길을 따라 오계초등학교 뒷산으로 소풍을 갔었다. 2열종대로 타박타박 걸어갔던..

사진속일상 2008.08.04

5월의 휴가

5/4(일) 어제부터 5 일간의 휴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5 월의 휴가는 온전한 내 휴가가 아니다. 5 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며 왠지 부담이 되는 달이다. 모든 것 뿌리치고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기에는 5 월의 압박이 너무나 세다. 나에게 5 월의 휴가는 결코 화려한 휴가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황금 연휴에는 양가의 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고향으로 내려가며 그 많은 기념일 중에 '나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는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기념일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기념일이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날은 모든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 보는 것이다. 예전에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청..

사진속일상 2008.05.07

안심리 느티나무

나무를 좋아하다보니 시골 마을에 들어서면 우선 정자나무가 있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마을에 큰 나무가 있으면친근감이 들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젖게 된다. 그런데 그런 나무가 없는 마을은 왠지 쓸쓸하고 허전하다. 정자나무는 단지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그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표현해주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고향 마을에는 그런 나무가 없다. 어릴 때야 나무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그런데 자주 놀러가던 이웃 마을에 이 느티나무가 있었다.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고, 이 나무를 중심으로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았다. 그리고 여름이면 넓은 그늘 밑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설날, 고모에게 세배를 하러 이 마을에 들렀다가 다시 보니 감회가 깊다. 안정면 안심리 한가운데에 있는..

천년의나무 2008.02.11

사람이 이리 기리워서 우에 사노

설날이 점점 쓸쓸해진다. 고향을 찾는 형제도 둘 뿐인데, 그나마 아이들이 커버리니 동생네는 두 부부만 참석했다. 그래서 올 설은 넷이서 차례를 지냈다. 더구나 올해는 여동생도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그런 걸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꾸 술을 찾으신다. 형제들이 우애있게 지내는 것보다 더한 효도는 없는 것 같다. 저녁에 이종사촌네가 북적거리며 찾아왔지만 반갑지가 않다.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노는 것도 피곤하고 헛헛하다. 사람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만큼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사람보다는 먼 산으로 들판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드디어 고향에 계신 외할머니 연세가 100 세가 되셨다. 출생년도가 1909년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꼭 100 세가 되신다. 백수(百壽)를 한다..

사진속일상 2008.02.08

개와 고양이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개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도꾸'라고 불렀던 개가 있었다. 어린 동생들이 방에서 응아를 하면 어른들은 먼저 개를 불렀다. "도꾸" "도꾸"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와서 응아를 깨끗이 핥아먹었다. 뒷자리는 걸레로 닦아내면 되었다. 당시는 아이들 응아는 그냥 방바닥에 누게 했고, 밖에서 놀던 개가 방안까지 들어와 그 뒷처리를 했다. 내 덩치보다도 더 컸던 도꾸는 어린 내가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힘이 세고 사나웠으며 더러웠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 유일하게 기억나는 도꾸와도 친근하게 지냈던 기억은 없다. 수년간 식구처럼 지냈을 그 개가 어느 날 멍석에 둘둘 말리고 몽둥이찜질을 받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았던 슬픈 기억만이 남아 있다..

길위의단상 2008.01.21

빗소리에 스르르 잠이 들다

엿새동안 고향에서 푹 쉬었다. 이번에도 역시 내 목표는 무료함을 즐기기였다. 그러므로 고향에 와서는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 이러는데는 겨울이라는 계절도 한 몫을 한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는 이 계절이 딱 어울린다. 셋째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내내 빗소리만 들었다. 그러다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사르르 잠이 들기도 했다. 겨울 빗소리는 여느 때와는 다른 색다른 맛이 있는데, 잠에서 깨어서는 그냥 다시 빗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창 밖을 내다보며 사람을 그리는 외할머니의 안타까움도 더해졌다. 외할머니 가슴은 기다림으로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그리움도 일상이 되면 만성이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간장이 녹아서 이렇게까지 오래 살지는 못했을..

사진속일상 2008.01.14

고향집에서 빈둥거리다

나흘간의 연휴를 고향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냈다. 졸리면 자고, 책 보고 싶으면 책을 읽고, 그냥 멀뚱히 누워있기도 하고, 나로서는 최대의 사치를 누린 셈이었다. 빈둥거린다는 것은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현대의 생활 법칙에 대한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일하기보다는 빈둥거리기를 좋아한다면 이 경제 체제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 상상을 즐기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껏 게으름을 부려 보았다. 세상이 아무리변했다고 해도그래도 아직 시골 마을은 정으로 얽힌 공동체다.시골 사람들의 화법은 도시와는 다르다. 시골에는 아직 도시와는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영위해왔던 생활방식이고 사고방식이다.그러나 시골의 노인들마저 사라지고 나면 전통적 의미의 정은 박물관의..

사진속일상 2007.12.25

김장 하는 날

고향에서 형제들이 모여 김장을 했다. 어머니로서는 한 해 농사의 마무리이고,형제들로서는모여서 얼굴 맞대고 같은 음식을 만드는 연례행사이다. 같이 음식을 먹는 행위, 또한 같이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가족이라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이 된다. 가족이란 한 상에서 같이 음식을 먹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형제들이 모여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에는 단순한 만남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 아마 이것도 어머니라는 구심점이 계시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특별히 우애 있는 집안이 아니라면 요사이 같은 세태에 형제들이 김장을 하기 위해 모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는 삼형제에 대구 이모네도 같이 김장을 담궜다. 어머니와 이모가 미리 미리 배추를 다 절여 놓았고, 우리는 ..

사진속일상 2007.11.19

2007 추석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의 뼈 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 김소월의 '고향' 중에서 우리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소월이 읊은 마음 속의 고향이고, 다른 하나는 추루해진 현실로서의 고향이다. 귀성길의 정체를 뚫고 악착같이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내 마음 속의 고향이 아니다. 많은 것이 변했고 사라졌고, 남아있는 것 그리고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너무나 낯설다. 어떤 면에서 고향길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확인하는 길이다. 그러나정말 변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고향은 예대로의 같은 모습이건만이미 나는 어린 시절의 눈을 가지고 있지..

사진속일상 2007.09.26

고향집에서 쉬다

고향집에 내려가서 일주일간 푹 쉬었다. 한 주일 내내 비가 오면서 날씨까지 도와줘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빈둥거리며 지냈다. 책을 몇 권 들고 갔으나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매일 밭에 들르시고, 반짝 볕이 난 한낮에는 고추 첫물을 따셨다. 어머니의 밭은 역시 단정하고 깔끔했다. 어머니의 실력은 집안 살림보다는 들일에서 발휘된다. 밭을 왕복하는 길에서 만나는 미루나무 풍경이 아련하고도 서럽게 내 마음을 울렸다. 하루는 동생네가 다녀갔다. 바람에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새로 고쳤다. 저녁에는 숯불에 구워먹는 삼겹살과 고등어구이가 아주 맛났다. 그러나 동시에 비어있는..

사진속일상 2007.08.12

정해년 설날

정해년(丁亥年)이 밝았다. 이런저런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올해가 몇 백 년만에 찾아온다는 '황금 돼지' 해라고 한다. 그래서 양력 신정 때부터 누런 황금 돼지 열풍이 불기도 했다. 올 설날은 포근한 겨울 여파로 봄날처럼 따스했다. 명절 지내기는 좋지만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큰 일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을 수있었다. 그것이 기우만은 아닌 것이, 이겨울의 안온함이 다가올 여름의 걱정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휴가 사흘밖에 되지 않아 고향에 다녀오는 길을 걱정했지만 예상 외로 쉽게다녀왔다. 아마 이러저리 잘 뚫린 도로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차량 대수가 적었던 옛날의 귀향길 고생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마냥 즐거워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진속일상 2007.02.19

고향에서 김장을 담그다

지난 주말에는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에서 형제가 모여 김장을 했다. 배추랑 모든 재료가 어머니가 직접 기르신 것이라 도시에서 재료를 구입해서 하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다. 돈이나 편리함으로 치면 도시에서 직접 담그는 편이 손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행사를 통해 따로 떨어져 살던 형제가 얼굴을 맞대고 먹을거리를 장만하며 한 가족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올해도 형제들이 다 모이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올해는 나도 손을 거들어 직접 배추속을 넣으며 한 몫을 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 담그는 일을 해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세 집에서 먹을 양으로 배추 150 포기 정도를 담근 것 같다.그러나 배추를 절이고 씻는 작업은 어머니와 이모가 다 해놓으셔서 우리..

사진속일상 2006.11.27

2006 추석

올 추석은 8일 동안의 휴일이 주어졌다. 2일과 4일의 징검다리 근무일이 모두 재량휴업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주와 영주의 처가와 고향집을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 어머님을 찾아뵙고 형제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것 또한 어찌할 수 없다. 긴 거리를 오랜 시간 움직여야하는 몸의 피곤보다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또 병약한 모습의 어른들을 뵙게 되는 정신적 피로함이 훨씬 더하다. 이번 길에도 처가 쪽에서는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큰어머님과, 본가 쪽에서는 암투병중이신 이모부님을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종이처럼 얇고 창백한 모습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특히 치매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나고 병들고 죽는 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운명이..

사진속일상 2006.10.07

농막을 고치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님이 일하시는 밭의 오래된 농막을 고쳤다. 물론 손재주 좋은 동생들이 대부분의 일을 했다. 이 농막이 밭에 세워진 것은 아마 30 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너무 오래 손을 보지 않아 지붕이헤어져 제 구실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형제들이 모여 같이 손을 합쳤다. 전날 밤에는 고향집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오랜만에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었다. 그간 소원했던 기간도 있었는데 비록 전부 모이지는 못했지만 서로간의 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고마운 시간이었다. 아마 그때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고 물었다면, 서로간의 따스한 정으로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떨 때는 형제 사이가 남보다 못하기도 있지만그래도 핏줄이란 건 무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사진속일상 2006.04.10

고향 냄새

어머님이 방 한 켠에 메주를 쑤어서 달아놓았다. 방안에 들어서면 구수한 메주 냄새가 온 몸을 적신다. 또 하나의 고향 냄새다. 어릴 때는 드나들며 저 메주콩을 뜯어먹기도 했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이 가지고 있는 냄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년 시절에 함께 했던 냄새들 - 고향의 공기, 고향의 땅, 고향의 집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마도 우리의 뇌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고향땅을 밟을 때 편안해지는 것은 아마도 직접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어머니의 젖냄새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후각이 퇴화되었다 하더라도 시각보다는 후각이 도리어 더 옛 향수를 자극한다. 가끔씩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쇠락하고 시들어가지..

사진속일상 2006.01.09

장선리 / 양문규

마당 한가운데 너럭바위 있다 댓돌 위 검정 고무신 있다 마루 한쪽 맷돌 확독 있다 뒤뜰 크고 작은 독 있다 외양간 코뚜레한 소 있다 사랑채 흙벽 종다래끼 뒤웅박 키 호돌이 삼태기 있다 뒷간 똥장군 똥바가지 있다 정짓간 쇠솥 있다 조왕신 절구통 절굿공이 있다 헛간 벽 쇠스랑 갱이 갈쿠리 걸려 있다 도리깨 홀태 족답식 탈곡기 있다 쟁기 지게에 얹혀 있다 닭장 닭둥우리 있다 개울 나무다리 놓여 있다 뒷산 서낭당 있다 상엿집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흑백사진 속의 풍경처럼 천태산 남고개 너머 더 깊은 골짝 장선리 - 장선리 / 양문규 30년 전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처음 읽었을 때 정보, 지식 혁명에 대한 개념들은 무척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제3의 물결이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쓰나미가 ..

시읽는기쁨 2005.12.07

안심리 포플러나무

어릴 적 고향 마을 앞에는 신작로가 있었다. 그 길은 비포장의 좁고 울퉁불퉁한 길이었는데 가끔씩 자동차가 나타나 뽀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갈 뿐 늘 한적한 길이었다. 차 보다는 걷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구루마’라고 불렀던 소달구지가 도리어 눈에 익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형편없는 도로였겠지만 당시로서는 대도시로 통하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신작로에는 키다리 포플러나무가 길 양쪽으로 끝없이 길게 서 있었다. 어린 우리들 둘이서 팔을 벌려도 잡히지 않을 만큼 큰 나무들이 남에서부터 북으로 약 10km에 걸쳐서 초록의 띠를 만들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은 우리들의 통학로였으며, 포플러나무들은 우리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여름에 포플러나무는 매미들의 집이었다. 바람이 불면 이파리들이 찰랑찰랑 흔..

천년의나무 2005.09.08

고향집

고향집에 자주 들러야 하건만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늘 무언가에 빚 진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자식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다른 데에 아무리 신경 쓴들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이번에 내려가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사는 게 지옥 같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내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악화된 상황이 몇 년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지만 어떨 때는 야속하기도 하다.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밖과 일에만 매달리는 어머니가 충분히 이해된다. 한식을 맞아 허물어진 산소를 손보다. 밭에다 만든 산소라서 땅이 단단하지 못해 비만 오면 비탈이 무너진다. 석축을 쌓아야 ..

사진속일상 2005.04.06

2004 추석

넷이서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다. 하나는 송편 빚는시범을 보여주는 어머님의 손이고, 하나는 딸 아이의 손이고, 나머지는 조카 둘의 손이다. 우리 집에서 송편 만들기는아이들 몫이다. 내 어린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추석 송편 만들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이쁘게 안 나온다고 몇 개 만들다가는 쫓겨나곤 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농작물을 말리는 계절이다. 마당에도 마루에도 방에도 정성스레 수확한 곡식들이 널려있다. 저 고추는 한낮의 햇살을 쬐다가 밤이 되면 군불을 땐 방으로 들어가 다시 몸을 말린다. 곡식을 가꾸는 것도 힘들지만 뒷 손질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걸 안다면 작은 곡식 한 알도 헤프게못 할 것 같다. 가을 하늘에 눈이 시리다. 집 마당에서 무심결에 쳐다본 하늘이 너무 파래서 ..

사진속일상 2004.09.29

김칫독을 묻으며

오늘 아침 고향 마을은 늦게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고향집 뒤 야산의 나무들도 아침 안개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 어제는 어머니, 동생네 식구들과 같이 겨울 김장을 담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터에 들러 집 뒤안에 김칫독을묻었다. .................... 눈 내리는 날, 집 뒤안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아름다운 그런 그리운 집이 될 수 있을려나..... ...............................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사진속일상 2003.11.30

새벽 전화벨 소리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운다. 방안은 온통 깜깜한데 가슴이 철렁한다. 수화기를 드니 고향에 계신 어머님이시다. 이젠 심장이 방망이질친다. ".....무슨 일이세요?" "응, 별 일 없나... 다음 주말에 전부 모여서 김장 하기로 했으니까 그 때 내려 온나..." 아이구..... 그렇다고 이 꼭두새벽에 전화를 하시다니..... 새벽 전화벨 소리는 너무 무섭다. 고향에는 96세 되신 외할머니가 계신다. 몇 년 전부터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서 함께 계시는 어머니가 무척 고생하신다. 금방 한 말도 잊어버려서 외할머니 옆에 있으면 똑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우습기도 하지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임종 소식이 올까 봐 늘 불안하다. 외할머..

길위의단상 2003.11.20

어머니의 송편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떡을 찝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은 저의 몫이죠. 이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떡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언제 느껴도 풍성하고 따스한 추석 풍경.....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떠나 보내고, 낡게 만들고, 지금은 어머니의 등마저 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가 쪄 주시는 송편 맛을 볼 수 있을런지... 정다운 것과 만나는 기쁨 속에는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진속일상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