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김칫독을 묻으며

샌. 2003. 11. 30. 17:32

 

오늘 아침 고향 마을은 늦게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고향집 뒤 야산의 나무들도 아침 안개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

어제는 어머니, 동생네 식구들과 같이 겨울 김장을 담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터에 들러 집 뒤안에 김칫독을묻었다.

....................

눈 내리는 날,

집 뒤안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아름다운

그런 그리운 집이 될 수 있을려나.....

...............................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 집

--김용택 / `그 여자네 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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