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겨울 나무 아래서

샌. 2003. 12. 4. 14:10

겨울 나무 밑에 앉아 있다.
벌거벗은 나신(裸身)이지만 부끄러움은 없다. 편안하다.
고개를 드니 나무가지가 그리는 기하학적인 선의 그림이 아름답다.
세 나무가 공중에서는 서로 뒤엉켜 마치 한 몸인 듯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겉치레를 버린 겨울 나무는 솔직하고 단순하다.
무척 가벼울 것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추운 계절을 견뎌내려는 스스로의 엄격함이 있을 것이다.

통하는 것이 남녀간에 정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도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통하는 기운이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이른 봄에 후배와 축령산으로 야생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돋보기와 청진기를 들고 왔다. 산에 가는데 왠 청진기인가.
정신없이꽃 사진을 찍다가 둘러보니 친구는 나무 하나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아기와 같았다. 그렇게 몇 십 분을 미동도 없이 있었다.
귀에는 청진기를 끼고 있었는데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었다. 이른 봄에 나무가 땅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것은 나에게 순수함이나 아름다움으로 표현해야 할그 무엇이었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의 온 몸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나무와 하나된 그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는 마치 한 그루 작은 나무와 같았다.
그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중섭 그림: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위의 그림을 보면서 오른쪽에 있는 아이를 보면 그날의 친구 모습이 연상된다.

우리가 외적 대상과 접촉할 때 눈으로 보는 단계, 몸으로 보는 단계, 마음으로 보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눈 만으로 보는 것은 피상적 단계에 머물지만, 몸으로 보는 단계가 되면 사물과 일체감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누구의 표현대로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닌 나와 너의 관계로 나아간다고 본다.
인간간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물상들과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고 싶다.

나무 아래 앉아겨울 나무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러나나에게는 아직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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