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눈 덮인 죽령 옛길을 걷다

샌. 2009. 1. 29. 20:27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사라졌던 죽령 옛길이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년전에 들었는데, 이번에 설을 쇠러 고향에 내려간 길에 그 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길은 희방사역에서부터 죽령 꼭대기(689 m)까지 소백산의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총 길이는 약 3 km 정도로 한 시간이면 넉넉히 오를 수 있다.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죽령은 영남과 기호지방을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달라왕(阿達羅王) 5 년(158 년) 3 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는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아달라왕 5 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갯마루에 죽죽을 게사하는 사당[竹竹祀]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죽령은 개척년대가 사서에 분명히 전하는 유일한 고개라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이곳은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였는데 신라 진흥왕 12 년(551 년)에 왕이 거칠부 등 여덟 장수에게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고, 그로부터 40 년 뒤인 고구려 영양왕 때는 온달(溫達) 장군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잃은 땅을 회복하러 출진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만큼 죽령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할 수 있다.

 

1910 년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사람들은 서울 왕래에 이 길을 이용했는데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나 관원들,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다. 그래서 이 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이나 마방들이 목목이 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백산을 관통하는 중앙선 철로가 놓이고 죽령을 넘는 국도가 뚫리면서 죽령 옛길은 인적이 끊기고 흔적이 사라졌는데 이번에 영주시에서 옛길을 복원시켰다. 길 군데군데에는 죽령의 역사적 유래에 대한 설명이나 식물 공부를 할 수 있는 안내문이 있어 유익한 옛길 걷기를 할 수 있게 했다.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산길에는 이번 귀성길을 고생길이 되게 했던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막 연휴가 지나선지 길은 호젓했다. 그래도 사람들 발길로 다져진 길이 선명했다.

 

직접 걸어보니 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수도 없이 다녔던 꼬부랑 국도는 굉장히 길었는데 이 길은 바로 죽령과 연결되어선지 희방사역에서 한 시간 정도면 고갯마루에 이를 수 있었다. 예전에 할아버지께서도 한양을 걸어서 가셨다는데 아마 내가 걸은 이 길을 따라 죽령을 넘으셨을 것이다. 이천 년 가까이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길이라 생각하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조선 명종 때 풍기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은 충청감사로 있던 그의 형 온계(溫溪)와 이곳 죽령길에서 마중하고 배웅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퇴계는 형제의 우애를 즐길 자리로 경치 좋은 곳에 잔운대(棧雲臺)와 촉령대(矗冷臺)를 세웠다고 한다.수백 년 세월을 격해 있긴 하지만 두 형제의 우애가 이번에는 더욱 부럽게 느껴졌다.

 

죽령에 오른 김에 소백산 등산을 하기로 하고 천문대로 가는 큰 길을 따라 올랐다. 다행히 차가 다니게 눈을 치워 놓아 걷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르면서 바라본 먼 산들의 조망이 시원했다. 사실 걸으면서 히말라야 산길이 자주 연상되었고, 내가 마치 아직도 히말라야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산에서 느끼는 포근함만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 산에서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것 같은 따스함이 있다.

 



소백산은 겨울철의 거센 바람으로 유명하다. 그런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버들강아지가 벌써 뽀얀 털을 내밀고 있었다. 아무리 겨울 한풍이 매서워도 부드러운 것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봄이 어느새 스며들고 있다.

 



두 시간 가까이 오르던 길은 천문대 입구에서 멈춰야 했다. 여기서부터는 쌓인 눈이 그대로여서 비록 길이 나있긴 했지만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연화봉을 거쳐 희방사로 내려갈 계획은 포기하고 발길을 되돌렸다.

 





배낭을 메고 산속에 드니까 마음이 무척 편안했다. 히말라야에서 돌아온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가만히 집에 있으려니 몸이 자꾸 근질거리는 것이었다. 어디든 자꾸만 걸어야 마음 속 응어리가 풀려나갈 것만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풍기온천에서 온천욕으로 몸을 풀었다.

 

오늘 걸은 산길은 약18 km, 여섯 시간 정도가 걸렸다.

 

이번 설은 동생과 단 둘이서 차례를 드렸다. 지금껏 가장 단촐한 명절이었다. 어머니는 자꾸만 쓸쓸하다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세상사가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서로의 진심이 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도리가없다. 새해에는 서로가 오해와 편견의 벽을 넘어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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