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새벽 전화벨 소리

샌. 2003. 11. 20. 09:00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운다.
방안은 온통 깜깜한데 가슴이 철렁한다.
수화기를 드니 고향에 계신 어머님이시다.
이젠 심장이 방망이질친다.
".....무슨 일이세요?"
"응, 별 일 없나... 다음 주말에 전부 모여서 김장 하기로 했으니까 그 때 내려 온나..."
아이구..... 그렇다고 이 꼭두새벽에 전화를 하시다니.....
새벽 전화벨 소리는 너무 무섭다.

고향에는 96세 되신 외할머니가 계신다.
몇 년 전부터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서 함께 계시는 어머니가 무척 고생하신다.
금방 한 말도 잊어버려서 외할머니 옆에 있으면 똑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우습기도 하지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임종 소식이 올까 봐 늘 불안하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특별하고 고마운 분이시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할 때 외할머니가 오셔서밥을 해주셨다. 돈암동 작은 방 한 칸을 세 얻어 살았다. 그 뒤로 동생들도 서울로 오면서 우리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다 해주신 것이다.
결혼할 때까지 외할머니와 그렇게 살았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일하시며 학비를 보내주고 실제로 어머니 역할을 하신 것은 외할머니셨다.

`외손자 키워봐야 다 헛것이라고 하더라.`
외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그 말대로 지금의 나는떨어져 살면서 아무 도움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가 보지도 못한다.
지난 번에 내려갔을 때는 니가 고향에 내려와 살아야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아팠다.
산다는게 뭔지, 내 가슴 한 구석은 이렇게 텅 비어있다.

가을은 떠나는 계절인가 보다.
고향 작은 마을에서는 최근 한 달 사이에 네 집에서 초상이 났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어제는 이웃 집 남자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 사업상의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우울해진다.
이 세상에 나왔다 돌아가는 것이야 저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정한 이치이련만 막상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은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동시에 그것은 나의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내 모든 꿈과 소망과 사랑하는 것들을 놓아두고 홀로 떠나야 할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구르몽의 시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그 언젠가가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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