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슬프게 하는 것들

샌. 2003. 11. 25. 14:44
일전에 테헤란로를 지나게 되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가보지 않은 거리가 많다. 테헤란로를 지상으로 지나가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길 양편으로 솟은 빌딩들, 깔끔한 거리 모습이 선진국의 도시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왠지 주눅도 들었다.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설명을 해 주었다. 저건 무슨 빌딩이고, 저게 그 유명한 ○○○이라고 했다.
이때 같이 있던 한 사람이 무심결에 "에라, 확 무너졌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들 에이 하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마음 속에도 그런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만큼 빈부격차의 문제는 심각하다.
전체적 평균은 나아지고 있을지라도 이런 상대적 소외감이 우리 모두를 아프게 하고 있다. 지역간 계층간에 차이가 심각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동서 분열과 함께 이런 상대적 빈곤이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우리나라 전체가구 중 50.3%가 무주택 가구라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나간 젊은이들 모두가 포함되어서 부풀려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자신의집을 가지지 못한가정이 무척 많은 것 같다.
반면에 276만 가구가 다주택 보유 가구이고 평균 3채 정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요사이 한창 동네북이 되고 있지만 강남에서는 약 4채 가까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의식주의 충족은 인간의 기본 욕구로서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 면에서 부동산 투기는 타인의 행복 추구 권리를 빼앗는 행위로밖에 볼 수가 없다.
다주택 보유 가구가 모두 부동산 투기자는 아니겠지만 땅이나 주택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보지 않게 된다면 좋겠다. 자신이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집이 다른 집없는 사람의 몫을앗아 가지고 있다는 의식을 가질 수는없을까?

내 경우도 지난 몇 년간 아파트 값이 치솟는 걸 배 아프게(?) 지켜 보기만 했다. 곧 전세 기간이 끝나니 또 이삿짐을 싸야한다.
나 같은 경우는 스스로 선택해서 이렇게 되었지만, 아둥바둥 살아도 전세금 올려주기 바쁘고 내 집 장만하기는 자꾸만 어려워지는 세상이니 서민들의 가슴이야 오죽할까 싶다.

더 한심한 것은 아파트 부녀회가 집 값 상승의 한 요인이라는 보도다.
서로 가격을 담합해서 낮은 가격으로 매매가 되지 않도록 부동산에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사실인지 의심스럽지만 만약 그렇다면 있는 자들의 도덕 불감증은 갈 데까지 간 느낌이다. 그들에게 가난한 이웃들의 서러움을 호소하더라도 콧방귀나 끼지 않을까 두렵다.

사는 것이 점점 살벌해지는 것만 같아 슬프다.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소망은 점점 요원해져 가는 것 같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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