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절망하는 농심

샌. 2003. 11. 21. 11:03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그저께는 농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급기야 도심에서의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다.
작년의 농민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현장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그 때 접한 농민들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한이 가득차 있었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 젊은 농민은 울고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TV로 보는 전경과의 충돌은 농민들의 속마음이나 울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 심각하게 자문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농민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 그리고 이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쪽의 공통된 정서는 박탈감이다. 빛 좋은 개살구식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그 희생의 대상은 늘 사회적 약자들이다.

어느 신문에서 보았는데 우리나라 도시의 빈곤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 생계비에도 미달하는 절대빈곤층이 최근 5년 사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 도시가구의 10%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빈곤층으로 추락 가능성이 있는 차상위 계층도 15%에 달해 이 둘을 합하면 약 25%가 하루 세 끼를 먹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금 농촌의 상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몇 년 전에 귀농한 어느 분이 농사를 짓고 있는데 젊은 부부가 일년 내내 논과 과수원에서 일해서 얻어지는 수입이 한 달에 약 40만원이라고 한다.
농촌이니까 그래도 버틸 수 있지 그 돈으로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겠는가.
농촌 이탈 현상은 지금도 가속화되고 있다. 아마 이것이 정부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수의기업농이 농사를 맡아야 경쟁력이 있다는 논리이다.

농촌이 죽어가고 있다. 그와 함께 농촌 문화로 대표되는 민족 정서나 아름다운 정도 사라지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많이 팔아먹기 위해서는 농촌이 황폐화한들 무슨 대수냐는 식이다. 돈밖에 보이지 않고 이윤 추구가 최고의 덕목이 된 오늘날에 농업이 소중하다고 나라의 바탕이 된다고 외친들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국 시대와 비슷하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 아홉을 가진 사람이 하나 가진 사람의 몫을 뺏어 열을 채우려 한다.
말이 좋아 재테크이지 많은 부분이 투기이고 뺏고 빼앗아 먹는 게임이다.
자유 경쟁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공정한 룰이 없다. 100m 시합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결승선 가까이에서 스타트를 한다.

방법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나누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 소득의 분배가 골고루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고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돈 때문에 자식을 데리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고, 병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세상이제대로 된세상일 수는 없다.

농민들은 거의 희망을 포기한 듯 보인다. 그 분들은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이고 형제 자매들이다.
그분들에 대한 그리고 농업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필요한 때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한 글을 인용합니다.

이제 때는 바야흐로 늦가을이다.
추수를 끝낸 농부들이 군불을 지핀 온돌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앉아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일년 중 가장 행복한 때이다.
힘든 노동을 끝내고 온 가족이 햅쌀로 지은 밥을 먹으며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는 시절이다.
추수가 끝난 들녘은 텅빈 충만으로 가득하고 뒷동산으로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드리워진 마을에는 밥짓는 냄새가 골목골목마다 향기롭다.
평온한 휴식도 잠시, 농부들은 다시 내년의 농사를 위하여 씨앗과 종자를 갈무리하고 퇴비를 준비한다. 이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농부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이 땅의 농부들은 추수를 끝낸 기쁨도, 평온한 휴식도 즐길 권리가 없다.
땀흘려 가꾼곡식을 태풍에, 장마에, 그리고 이 비정한 권력과 천민 자본주의자들에게 다 빼앗기고 헐값에 갖다 바쳐야한다. 항의도 저항도 용납되지 않는다.
농민들이여!
그대들이 언제 사람으로 대접받은 적이 있었던가?
이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오직 말로만 "농자천하대근본"이라고 놀림받지 않았던가?

경북 청송에 벼농사와 사과농사를 짓는 한 우직한 농민이 살고 있다. 농민가를 즐겨부르고 그저 이웃들에게 퍼주기 좋아하는 그를 우리는 "청송사과"님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이 부지런하고 선량한 대한민국의 한 농민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구속되어 그가 발을 딛고 살았던 들녘을 떠나는 날, 그래서 하늘도 슬퍼 빗물을 뿌렸나보다.

농부가 흙을 떠나 어디에서 산단 말인가?
실패한 농정에 분노하여 데모 한 번 했다고 3년의 실형을 선고하여 1년 6개월을 창살감옥에 가두다니! 이것이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수 십억, 수 백억 도둑질해먹은 놈들은 금뱃지 달고 국회의사당에서 낮잠이나 즐기는데, 뼈빠지게 농사짓던 농민을 감옥에 가두다니!
그냥 눈물이 나올려고 하네.

이 징한놈의 세상, 농민들은 그저 자기 식구들 먹을 식량만 농사지어 산골에서 조용히 살자.
아쉬우면 중국산 미국산 수입해다 먹던지 말던지 알아서하게 내버려두고, 우리 농민들은 세상이 어찌되든 말든 그냥 우리 먹을 것만 생산하여 조용히 살자.
이런 세상에서 우리 자식들 출세하면 뭐하냐?
그냥 비싼 돈들여 새끼들 교육시키지 말고 농사나 가르쳐 산골에서 오손도손 조용히 살자.
세상 소식 다 끊고 그저 계절이 오는 대로 맞이하면서 살다가자.

청송사과님.
나 마당 한 구석에 온돌방 딸린 정자를 한 채 지어놓을테니 빨리 나와서 함께 차나 마십시다.
이따위 날벌레만도 못한 세상사에 더 이상 관심 갖지 맙시다. 노무현이건 누구건 다시는 신경쓰지 맙시다.
맑은 석간수 떠다가 돌솥에 끓여 은적산 넘어 번지는 저녁노을 바라보며 함께 작설차나 마십시다그려.
그대가 지은 현미로 밥을 짓고 우리집 앞 마당에 열린 단감을 따서 상을 차립시다.
그리고 별들 찾아오는 밤이오면 메밀묵에 곡차도 한 잔 합시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도 한 편으로는 목이 메어 옵니다. 시골에 계신 노부모님 맘에 걸려 어찌 견딜려오?

때는 단풍도 지쳐가는 늦가을이다.
고개들어 창 밖을 보니, 노오란 은행나무 잎이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표표히 날린다. 돌담 밑 국화가 맑은 향기를 내뿜고 사립문 옆 대숲에는 한 줄기 소슬바람이 인다.
그러나 저 늦가을 풍경들이 이제 무슨 의미가 있으랴.
주인 잃은 청송의 사과밭에는 빨간 사과들이 서리 맞은 붉은 얼굴을 숙인 채 수줍은 듯 오지못할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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