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친구가 견진 받는 날

샌. 2003. 11. 8. 11:49
오늘은 친구가 견진을 받는 날이다.

이 친구와는 시골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런데 서로 가까와진 건 서울에 있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었다. 당시 4명이 올라 왔는데 이 친구와는 1학년 때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60년대 말, 모두가 어려운 때였다. 시골 학생들은 대부분 셋방을 얻어 자취 생활을 했다. 친구도 형들과 함께 산동네 좁은 방에서 어렵게 지냈다.

그래도 우리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한 친구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할 정도로 곤궁했다. 어떤 때는 셋방에서 쫒겨나독서실서 살기도 했다.
그런 힘든 환경에서도 모두들 공부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웃음을 잃지도 않았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그 때에 가장 꽃 피지 않았는가 싶다.

친구는 법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사시에 도전했으나 계속 실패했다. 졸업하고도 몇 년간 더 시도를 하다가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대기업이어서 그런대로 괜찮은 직장이었다. 그리고 결혼하고 안정된 생활을 해 나갔다.

그 뒤로는 친구와 만나는 것도 점차 뜸해졌다. 소식이 몇 년씩 두절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온 나라가 IMF 위기로 흔들릴 때 그가 회사에서 명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업의 구조 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기반을 잃었다. 친구도 고등학생 두 자녀을 둔 상태에서 수입이 끊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재산을 넉넉히 모아둔 것 같지도 않았다.

친구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더니 부동산 사무실을 열었다. 그러나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찾아가 보면 손님도 걸려오는 전화도 없고 늘 혼자였다. 이것도 수완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적성이 안 맞는 것 같다며 그는 사람 좋은 웃음만 지었다.
오랜 사회 생활을 한 사람답지 않게 친구는 어릴 때의 순수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주식도 부동산 투기도 또는 회사 임원의 필수 사항인 골프조차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세상적으로는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결국 1년여 하더니 사무실은 손해만 보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빈둥거리기 뭣하다며 혼자 시골로 내려갔다.허름한 방 한 칸을 빌리고 텃밭을 가꾸며 매제가 하는건축 일을 도와주며 지냈다. 그것은 공사장 잡부의 일이었다.
친구의 아내는학원 강사 자리를 얻어 생활비를 충당했다. 힘든 것에 비해 수입은 시원찮아 보였다.
그래도 친구는 힘든 내색을 별로 하지 않았다.

작년에친구는 다시 서울에 돌아와 지금은 주유소의 주유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밤에는 자동차 정비 학원에 다니더니 최근에 실기 시험까지 합격하고 자격증을 땄다. 자동차 검사원으로 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사회에서의 친구 관계도 대부분 끊어졌다고 했다.
주머니가 가벼우니 친구와의 만남도 부담이 되고 두렵다는 것이다. 그 심정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 같다.

이 친구가 실직 후 어려웠던 시기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종교적 위로가 그에게 힘이 되고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전 이제 견진을 받게 되었으니 대부를 서 달라는 연락이 왔다.
흔쾌히 수락했지만 마음은 아팠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친구의 어려움에 작은 도움조차 되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함도 컸다.

이렇게 친구의 얘기를 길게 적은 것은 우리 사회가 소외된 이웃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게 아닌가 싶어서이다. 우리 나라가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이다.
친구의 사정은 다른 절박한 실직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일지 모른다. 그나마의 소득도 없이 하루 하루를 힘들게 연명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은 고등 실업자들도 숱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현직 노동자들 조차 메아리없는 노동 조건 개선 요구에 목숨을 걸고 있고, 사오정, 오륙도, 삼팔선하며 그나마도 불안해하고 있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수 백억의 검은 돈이 왔다 갔다하고, 투기로 하룻밤새 수 천만원씩 벌기도 한다. 있는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빼앗아가는 도둑질이 분명해 보인다. 꼭 남의 집 담을 넘어야만 도둑놈은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는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인간 중심 구조가 아니고 이윤 중심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구조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심성마저 그런 방향으로 유도한다. 거기는 철저한 이윤 추구와 이기주의 만이 존재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다.
강자는 약자에 무관심하고, 약자는 세상을 원망하며 이를 간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묘약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분배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 국민 소득 1만 달러, 2만 달러 하는 것은 부자들의 잔치일 뿐이다. 다른 이들은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주워 먹으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좀 못 살더라도 골고루 나누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것이 구호만의 2만 달러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나눔의 구조로 바꾸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일등과 능력있는 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꼴찌와 힘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일하고 대우받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친구야, 힘내자!
열심히 살아가는 너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유일한 것은 사랑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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