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처남의 10주기

샌. 2003. 10. 22. 11:06

꼭 10년 전이었다.
강릉에 살고 있던 처남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평소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기에 설마 하는 심정으로 달려갔다.
처남은 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연구실에있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병명도 원인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앙병원으로 이송하였다.
역시 응급실에 있으면서 종합 검진을 받았다.
의사들도 처음에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급성 폐암으로 진단이 나왔다.
너무나 악화된 상태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손바닥에 글씨를 쓰며 의사 소통을 하기도 했으나곧 혼수 상태로 빠져 들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만났던 짧은 면회 시간, 귀에 대고 얘기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형, 빨리 나아서 우리 또 바둑 둬야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처남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그 때 처남의 나이 마흔 한 살.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이승을 떴다.

처남의 죽음은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이렇게도 사라지는구나. 능력 있고 기대가 컸던만큼 그의 죽음은 아무리 험한 일들에 만성이 되어 있다고 해도 충격이었다.
특히 가족에게 준 충격은 너무나 컸다.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처남은 가족에게 많은 짐을 남겨놓고 간 것이다.

장례 의식을 치르고 그를 묻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숨었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처남과 관계된 추억 탓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인간 존재의 허망함 때문이었다.
그의 몸과 함께 그가 품었던 꿈과 소망들도 물거품처럼 사라져갔다.
한 순간에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서게 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저 가을 바람 한 자락, 거기에 떠가는 먼지 하나에 불과할 뿐인가.

그로부터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있는 처남에게 참으로 면목이 없다.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조카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째 제사에도 가보지 못하고 있다.
처남이 본다면 어찌 사람이 그러냐면서 많이 나무랄 것 같다.
여기 저기 사람 노릇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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