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행복의 조건

샌. 2003. 10. 18. 11:23
나는 지금 행복한가?
글쎄다.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약간은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행복한 상태는 아니다.
때에 따라 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금의 나는 불안하고 욕구 불만에 차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크게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나의 바램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나의 개인적 성취일 뿐,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한 끼 끼니를 걱정하는 이웃이 있는데 혼자서호의호식하는 것이 참된 기쁨이고 행복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또어려운 형제를 못 본 척해 놓고 내가 어찌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게 다 그렇겠지 뭐 하는 소극적 방어기재 덕분에 지금은 그나마 별 탈없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살다보니행복과 불행을 쪼개놓고 행복 쪽으로만 추구하는 삶이별 의미 없다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다.
행복은 쫒아간다고 붙잡힐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꽃밭에 가서 나비를 잡으러 쫓아가면 나비는 그만큼 더 멀리 도망간다.
그러나 꽃밭 가운데에 가만히 앉아서 꽃과 같이 되면 나비는 저절로 내 어깨에 내려 앉는다.
아마 행복도 나비와 비슷하지 않을까?

개인적 관점에서 행복이란 마음과 영혼의 평화라고 말하고 싶다.
내적 평화는 무엇을 갈구하고 욕망하는 데서가 아니라 마치 꽃밭 속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마음의 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莊子는 이것을 坐忘이라고 표현하였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마음은 쉬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의 경지를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행복이란마음 다스리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범인들에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쉼없이 추락하고 낙마하면서 행과 불행의 시소를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을.....

오늘 아침 중앙일보에서 기사 하나를 읽었다.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오늘 아침 건강하게 일어났다면 이번 주 안에 이 세상에서 죽을 1백만명보다 훨씬 더 축복받은 셈입니다.
*당신이 배고픔을 겪지 않고 있다면 이 세상 사람 중 5억 사람보다 더 축복받은 셈입니다.
*당신이 비를 피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더 축복받은 셈입니다.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놓았다면 이 세상의 8% 안에 드는 부자입니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세상의 20억 사람들보다 더 축복 받은 셈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웃는 얼굴로 이 모든 축복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축복받았습니다….

 

외적 여건으로만 따지면 우리 대부분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전 세계인과 비교할 때 물리적 환경에서 우리는 상위 계층에 속하는 혜택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인가?
물질에서는 부자일지라도 마음과 영혼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가난할지 모른다.
나만 잘 살겠다고 싸움박질하는 이 척박한 이기적땅이 굶주리고 무식한 사람들이 사는 저 곳보다 더 살벌한 전쟁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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