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침묵의 달

샌. 2003. 12. 1. 14:07
12월의 첫 날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이 달을 `침묵의 달`로 불렀다고 한다.

12월로 시작되는 겨울은 침묵의 계절이면서 휴식의 계절이다.
쉼없이 일하던 자연도 잠시 숨을 고르는 계절이다.
무수한 잎들을 대지에 돌려주고 나무는 고독한 철학자의 모습으로 이 겨울을 맞는다.
뭇 생명들도 분주하던 삶을 멈추고 안식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점점 차가와지는 날씨에 사람들도 몸을 움츠리며 따스한 방과 가정의 품으로 모여든다.

겨울은 바쁜 삶 속에 묻혀 보지 못하던, 듣지 못하던, 망각하고 있던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절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알게도 된다.
어둠과 침묵의 가치가 다시 되살아 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와 너무 많은 이론들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활동과 외침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쉼과 침묵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겨울은 내향적이다.
외부로 보다는 내부로 향하는 문이 넓어지기를 이 겨울은 말없이 요구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다급하게 구하고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보게 한다.

`하루는 붓다가 길을 가다가 커다란 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청년들이 다급하게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붓다를 발견하고는 다가와서 물었다.
"혹시 이쪽으로 도망온 여인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왜 그 여자를 찾는 것인가?"
"저희는 오늘 부부 동반으로 소풍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미혼이라 기녀(妓女)를 데리고 왔는데, 우리가 노는 사이에 그 여자가 물건들을 몰래 챙겨서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자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중에 어느 것이 더 보람있는 일인가?"`

아마도 이 청년들은 여자를 쫒던 길에서 붓다를 따르는 길로 방향 전환을 했을 것 같다.
이런 만남이 이 겨울에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리긴 했지만 결국은 나 자신과의 만남이 될 것이다.
침묵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며 이 겨울과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더 아름답고 더 경이로워진 내년의 새 봄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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