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07 추석

샌. 2007. 9. 26. 10:39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의 뼈 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 김소월의 '고향' 중에서

 

우리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소월이 읊은 마음 속의 고향이고, 다른 하나는 추루해진 현실로서의 고향이다. 귀성길의 정체를 뚫고 악착같이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내 마음 속의 고향이 아니다. 많은 것이 변했고 사라졌고, 남아있는 것 그리고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너무나 낯설다. 어떤 면에서 고향길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확인하는 길이다.

 

그러나정말 변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고향은 예대로의 같은 모습이건만이미 나는 어린 시절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픈 눈으로 바라보니 고향은 아프다. 마음자리가 달라졌으니 고향은 쓸쓸하고 무겁다. 그 예전에도 병든 노인이 있었고,악다구니가 있었고, 형제간의 불화가 있었다. 그래도 추억 속의 동심은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송편을 쪄내는 어머니의 손길이 흥겹다. 소금기름을 바르고 간이 맞는지 보라고 입에 넣어준다. 금방 솥에서 꺼낸 송편은 입이 데일 듯 뜨겁지만그 고소한 맛만은 잊을 수 없다. 추석하면 송편이고, 송편하면 그 순간의 맛이다.

 

추석전날이면 식구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자리가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송편 빚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으려 했다. 어른이 되면서는 만든 송편의 모양새가 없다고 쫓겨나는 일이 흔하더니, 올해는 아예 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들에는 가을이 익고 있다. 저녁에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저녁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동쪽 하늘에 만월에 가까운 달이 떠올랐다.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다. 영혼에 새겨진 유년의 기억들이 지금의 고향과 내 모습을 힘들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유년의 기억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진실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 힘든 현실을 치유하는 비방이 숨어있지 않을까?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라오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고향 / 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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