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초추의 양광

샌. 2007. 9. 17. 17:39



가을 햇살에 취해 창경궁을 산책하다.

태풍 일과 후 하늘은 끝없이 밝고, 맑은 대기에는 시원한 바람이 가득하다.마음은 풍선 마냥 저 푸른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간다.

문득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한 구절이 떠오른다.

'정원의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소조(小鳥)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갑자기 이 구절이 떠오른 것은 아마 '초추의 양광'이라는 고전적인 어휘가 주는 정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초가을 햇살 환한 창경궁 길을 걸으며 이 말을 쉼없이 마음 속으로 반복했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지극히 슬픈 것과 통하는 법이다. 지극히 착한 것은 지극한 고난과 통하는 법이다.

하필 오늘 같은 날, 한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교육운동에 자신을 헌신했다가 결국은 몸을 상하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셨다. 한 줌 먼지 같은 권력과 출세를 탐하며 떵떵거리며 큰소리 치는무리들 가운데서 그는 높고도 귀한 길을 보여 주었다. 일제 시대에 현실에 아부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은 해방 뒤에 괄시 받으며 힘들게 살아야 했다고 누군가 옆에서 울분을 토했다.

세상이 너무나 밝고 환해서 왠지 모르게 더욱 슬퍼진다. 이것도 못 말리는 가을병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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