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5월의 휴가

샌. 2008. 5. 7. 18:18

5/4(일)

 

어제부터 5 일간의 휴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5 월의 휴가는 온전한 내 휴가가 아니다. 5 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며 왠지 부담이 되는 달이다. 모든 것 뿌리치고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기에는 5 월의 압박이 너무나 세다. 나에게 5 월의 휴가는 결코 화려한 휴가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황금 연휴에는 양가의 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고향으로 내려가며 그 많은 기념일 중에 '나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는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기념일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기념일이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날은 모든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 보는 것이다.

 



예전에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집에 도착하면아무도 없고 집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은 낮밤 없이 늘 들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아들이 오랜만에 내려와도 일을 쉬시지 못할 정도로 부모님은 그렇게 억척스럽게 일을 하셨다. 그때는 부모님에 대한 안스러움과 함께 서운한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일보다는 자식을 반가이 맞이해주는 부모님이기를 속으로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텅 비어있는 집을 보니 그때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어머니는 몇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오셨다.

 

외할머니는 자꾸만 오지도 않을 사람을 찾으셨다. 그래도 밝고 건강하신 어머니를 뵈니 마음이 놓였다. 자식이 많으면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속 상하실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장남의 몫을 다하지 못하는 탓으로 자꾸 자책이 되었다.

 



고향집 뒤란에 흰민들레가 곱게 피어났다. 올해는 마을길에서도 여기저기에 흰민들레가 자주 눈에 띄었다. 같은 민들레지만 흰색은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5/5(월)

 

밤 사이에 비는 감질나게 오는 듯 마는 듯 지나갔고, 아침에는 다시 맑은 하늘이 열렸다. 어머니, 이모, 그리고 아내와 함께 밭에 나가 쑥을 캐고 뽕잎을 뜯었다. 아버님 산소를 가득 덮은 쇠뜨기에 마음이 아팠다.

 



집에서 곱게 기다리지 못하는 외할머니가 동구까지 우리를 찾으러 나오셨다. 딸이 딸임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외할머니는 항상 누군가를 찾고 기다리신다. 사람이 옆에 있어도 또 다른 사람을 찾는다.

 

오후에는 예천, 상주, 영동, 무주, 진안을 거쳐 전주 처가에 도착했다. 영주와 전주 사이에는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없어 4 시간여 꼬부랑 국도를 따라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국도 여행을 즐기게 되는데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전에 자가용이 없었을 때는 버스와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며 가는데 하루 종일이 걸렸다. 지나고 보니 그건 또 그대로의 맛이 있는 여행이었다.

 



지나는 길에 진안 용담호에서 휴식을 했다. 호수의 풍광이 무척 아름다웠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며 뒤집어지는 나뭇잎들의 희뿌연 색깔이 파란 물과 잘 조화를 이루었다. 어느 책에선가 그 나무 이름이 신갈 아니면 떡갈이라고 했다.

 

전주에는 두 처남이 와 있었다. 사업을 하는 처남은 요사이 무척 어렵다는데,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자식이 그러니 부모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인생의 8 할은 근심과 걱정이라는데 그 중 대부분이 자식 걱정이 아닌가 싶다. 돈은 혈연조차도 서운하게 만든다. 심하면 형제가 남보다 못한 사이로 변하기도 한다. 정말 머니가 뭔지?

 

5/6(화)

 

어제 저녁 8 시에 잠자리에 들어서무려 12 시간을 잤다. 이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작은 노동에도 금방 피로해진다. 전에는 하루 종일을 운전석에 앉아 있어도 끄떡 없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힘에 겹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잠귀신이 붙어있어 세상 모르고 푹 자고 나면 다음 날은 회복이 된다.

 



오전에 전주천을 산책했다. 이번에는 백제교에서 하류 방향으로 추천대교까지 다녀오는 왕복 약 6 km의 길이었다. 전주천은 전주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이다. 일부 구간은흙길이어서 걷기에 아주 좋았다. 관리 탓인지 모르지만 산책로는 이왕이면 흙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보다도 우선은 아직도 미흡한 수질 정화다. 저 아름답게 보이는 풍경도 물 가까이 가면 악취가 풍긴다.

 

나로서는 홀로 걷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길만 보면 하루 종일이라도 끝없이 따라 걷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대여, 배낭 하나 가볍게 매고 두려워 말고 길을 떠나라.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라.

 

오후에는 장모님을 모시고 죽림온천에서 온천욕을 했다. 원래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 갈 계획이었으나 먼 길을 다녀올 자신이 없어졌다. 이래서 구경이든 공부든 다 때가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5/7(수)

 

오전에는 화산공원을 산책했다. 화산은 서울로 비유하면 전주의 남산이다.

 



산에 오르니 아까시 향기가 진동했다. 달콤한 꽃향기에 절로 눈이 감겼다. 아까시나무나 아까시꽃 역시 향수를 자극하는 나무며 꽃이다. 어릴 때 고향에서 가장 가까이 접했던 나무 중 하나가 아까시였다.

 



역시 활짝 핀 이팝나무꽃도 만났다. 이제 보니 몇 주 전에 한 동료에게 나무 이름을 엉터리로 가르쳐 주었다. 이게 이팝나무인데 엉뚱한 걸 이팝이라고 그랬던 것이다. 가만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했을 텐데 괜히 아는 척 했다가 금방 들통이 나버렸다. 모르는 걸 솔직히 모른다고 하는 것은 말 만큼 쉽지가 않다.

 

오후에 귀경했다.

 

멀리 계신 노모를 뵙고 오는 길은 늘 씁쓰레함이 남는다. 의무방어전을 치르듯 자식은 훌쩍 떠나오는데 뒤에 남는 허전함의 자리가 너무 크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에도 자식의 마음에도 쓸쓸함의 파문이 번져 나간다. 그것은 자식이함께 모시고 산다 해도 채워지지 못할 쓸쓸함인지 모른다. 인생 자체의 외로움과 쓸쓸함, 우리 모두의 나약한 인간이 견뎌내야만 하는 외로움과 쓸쓸함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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